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4/21
일제시대 군산은 상당량의 미곡을 취급하는 항구도시였다. 출처-군산시청
채만식의 <탁류>가 미두장을 무대로 설정한 것은 상당히 문제적이다. 미두장이란 당대의 자본주의적 질서의 총체성이 온전하게 깃들어 있는 장소이며 또한 당대의 사회적 관계의 총화라 할 만한 곳이었다. <탁류>는 이러한 미두장을 전면에 내세워 이곳에서의 풍경이 곧 당대의 중핵임을 분명히 하며 이전과는 전혀 이질적인 세계상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미두라는 시스템은 토지가 있는 존재이건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존재이건, 아니면 재산이 있는 사람이건 아무 재산이 없는 사람이건 모두가 미두장에서의 미두 행위처럼 일확천금의 도박을 감행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내적 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미두장이란 대체 어떤 공간인가.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채만식의 <탁류>는 이처럼 미두장의 매커니즘을 시대의 본질 혹은 사회의 증상으로 써낸 것일까. 다시 말해 도대체가 <탁류>는 미두장의 어떤 속성에 주목했기 때문에 그 시대 전체가 곧 미두장 앞의 실존 형식과 같다고 말하게 된 것일까.

소위 ‘미두장’, 정식 명칭으로 부르자면 미곡취인소는 흔히 도박장 혹은 식민지 수탈의 첨병처럼 알려져 있지만 그것이 미두장의 본래적 기능은 아니다. 그곳은 쌀 등의 농산물을 효과적이고 원활하게 교환하기 위한 곡물의 집적지이면서 동시에 대단위 시장이다. 뿐만 아니라 미두장은 농산물 시장의 임의성과 불안정성을 억제하기 위한 매개 장치이기도 하다.

미두장은 처음에는 농산물과 현금을 직접 사고파는 현물시장이었다가 점차 상품의 수요-공급에 있어서의 투기성과 불안정성을 줄이기 위해 창안된 자본주의적 경제장치인 선물시장의 형태로 변화한다. 예컨대 쌀 등 곡물은 상품으로서 대단히 불안정하고 품질의 균질성이 보장되지 않으며 또한 자유롭고 합리적인 가격 결정이 힘든 상품이다. 홍수, 가뭄, 태풍 등 천재지변에 따라 어떤 상품보다 가격변동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쌀 ...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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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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