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탄>은 어떻게 검열을 피할 수 있었을까
소설과 영화 <오발탄>은 어떻게 검열을 피할 수 있었을까
1959년 처음 발표된 소설 <오발탄>은 참담한 전후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고발함으로써 분단과 빈곤의 문제, 양심과 윤리의 문제에 대한 대한 깊은 통찰을 시도한 전후 소설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해당 작품을 각색하여 만들어진 영화 <오발탄>(1961) 역시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리얼리즘 영화로 칭송받으며 한국영화사의 최고의 걸작으로 불리운다.
그러나 두 작품이 독자나 관객을 만나기까지, 그리고 상술한 것처럼 높은 평가를 받기까지는 상이한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은 1959년에 현대문학 10월호에 등재되면서 순조롭게 발표되었지만 영화 <오발탄>은 당시 상영중지 처분을 받고 개작을 하고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야 겨우 상영될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소설이 발표된 1959년과 영화가 촬영된 1960년, 그리고 영화가 상영된 1961년이라는 특수한 시간성, 중요한 한국사의 변곡점을 상기하면서 매체적 특성과 더불어 “검열”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여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2.1950년대 문학 검열과 소설 <오발탄> 소설이 발표되던 1950년대 당시의 문화검열은 당대 지배 이데올로기인 반공주의와 반일주의를 기조로 한 사상 통제였다. 한국전쟁 이후 문교부는 문학·영화·음반 등에 대한 검열 시행령과 검열기준을 마련하고 산하 문화국에 의해 검열이 일원화되도록 했다.
그런데 1950년대 문화 검열에 접근할 때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은 검열이 시행되기 이전에 국가권력이 이미 상당한 문화통제력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봉범(2012)에 따르면 1949년 전향국면과 한국전쟁을 통해 반공주의에 입각한 내부 평정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한 국가권력의 시민사회에 대한 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