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추락의 시대, 말 모으던 어른들을 생각한다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3/10/26
국어에 대해 흔히 주어지는 편견이 있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와 현재를 아주 자연스런 무엇으로 여기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쓰는 말과 글, 또 지난 수십 년간 이어진 그 변천은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어서, 한글이 창제된 이래 지금까지도 그와 같이 자연스러운 변화를 겪었으리라 여기고는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누리는 말과 글의 지난 역사는 결코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불과 백수십 년 전 동아시아 제일가는 제국을 지배한 말갈과 여진족은 오늘날 독자적인 국가는커녕 제 문화조차 산산이 흩어버리고 소멸 직전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또 수세기 전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공포에 떨게 한 몽골족은 통일된 언어를 수립하지 못한 채 기초적인 수준의 다양한 언어를 사용한다. 공용어인 몽골어 외에 중국어나 카자흐어, 러시아어를 쓰는 이가 많고 문자 또한 슬라브계 키릴문자를 사용하는 게 보통이다.

동아시아에선 몇 안 되게 중국과 독립하여 독자적인 세력권을 유지한 베트남 또한 식민지배를 거치며 알파벳을 차용한 쯔꾸옥응우 체계로의 개편을 할 밖에 없었다. 주변국에 비해 인구나 세력이 크지 않은 한국이 역사의 격변을 거치면서도 독자적인 말과 글을 만들고 지켜왔다는 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 말모이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오늘의 한국어, 결코 당연하지 않다

<말모이>는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이 누군가의 공로에 크게 빚지고 있음을 알게 하는 영화다. 한글날의 원조 격인 가갸날을 제정한 조선어연구회, 나아가 그 후신인 조선어학회가 영화의 주인공이라 해도 좋겠다.

조선어학회는 1931년 조선어연구회의 이름을 바꿔단 단체로, 20세기 초 국어연구학회에서 출발해 시대의 변천에 따라 수차례 이름과 형태를 바꾸었다가 오늘날 한글학회로 이어진 단체라 하겠다. 1931년부터 독립 이후까지 조선어학회란 이름 아래 활동했으며, 1942년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에 맞서 항거하다 33명이 체포되고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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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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