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후한 주별 인구

이재문
이재문 · 역사와 축구에 관심이 많습니다.
2023/01/19
흔히 유비는 익주 하나 밖에 없었는데 조조는 훨씬 많은 주를 보유했다 식의 말들이 있는데요.
 
그 시대 중원이 남방에 비해 더 발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방 1개주를 남방 1개주와 동급으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우선 아래는 한나라 행정구역 지도입니다.
사주는 잘못된 표현이고 司隸[사예]가 맞는 표현이라고합니다.
사예는 수도권을 지칭하는 말로 원래 장안 주변까지 포함하고 있었으나
이각-곽사가 사례에서 장안 주변과 양주 동부를 통합해 옹주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함곡관 동쪽은 이각-곽사의 통치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기 때문이죠.
행정구역은 인위적인 것이기에 변하기 나름입니다.
청주중 유일한 하북 지역 군인 평원군은 위공국 설치시 기주로 편입되었습니다.
https://encrypted-tbn0.gstatic.com/images?q=tbn:ANd9GcRyy3HW8l-chhTpcOwhYg3WeSbCudVTOUm_xIA21MRJNGVBwhezHov-YjleidRU0U4FDn4&usqp=CAU
일단 딱 봐도 익주, 형주, 양주 등 남방 주들이 면적이 훨씬 큽니다.
물론 양자강 이남의 습지대를 논으로 개간해 생산력과 인구가 폭발하여 중원의 경제력을 추월하는 시기는 대략 남송 때쯤으로 보지만 그 이전에도 꾸준히 발전이 있었습니다.
 
특히 중앙 정부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삼국지 시대 오나라 손씨 정권은 미개척지였던 양주 내륙까지 개발하고 현지의 산월인들까지 세력권에 편입시켰습니다.
비슷한 예로 제갈량이 남만(오늘날 운남성 일대)을 정복했죠.
 
아래는 후한서 지리지의 후한 주별 인구입니다.
오늘날에도 인구 집계하다보면 계속해서 출생과 사망으로 변동이 생기기 때문에 정확히 어느 한 시점의 인구를 파악하는게 어렵지만 고대에는 그게 훨씬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형주 남부와 교주 북부의 산악지대, 양주 내륙의 산악 지대는 한족화 되지 않은 이민족들의 공간으로 이 지역은 당연히 한나라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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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크 재활병원 출신 현 개원 한의사 취미는 역사와 축구입니다. 건강 관련 의학상식이나 혹은 제가 취미로 다루는 분야의 얇팍한(?) 지식들을 아마추어 수준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게 정리하는 글들을 써볼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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