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의 유언장
2024/09/17
신세(身世)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발견했을 때 작은 충격을 받았다. 제대로 된 뜻도 모르고 자주 사용했던 단어인데 이 한자 조합이 만들어낸 뜻은 꽤 심오하다. 직역하자면 " 세계(世) 안의 나(身) 1) " 라는 뜻인데 < - 지다 > 라는 동사와 결합하면서 뜻이 깊어진다. 여기서 " ㅡ 지다(졌다) " 라는 동사는 물건 따위를 등에 짊어서 얹다, 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 신세를 지다 " 라는 뜻은 세상 밖으로 던져진 나를 등에 얹다는 의미다. 마치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나를 키운 어머니처럼 말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이며 철학적인가.
아무리 제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이라 해도 혼자서 크는 법은 없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등에 업혀 자란 천둥벌거숭이 고아'다. 사르트르는 타자는 지옥이라고 독설을 퍼부었지만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속에서 나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타자의 시선 속에서만 존재하며 타자의 욕망을 욕망할 뿐이다. 그 아무리 만석꾼 자식으로 태어났다한들 천재 한 명이 전체를 먹여살린다는 말은 철학적 사고의 빈곤이 낳은 천박한 논리다. 이 위험한 사고의 확장이 히틀러 같은 괴물을 낳는 법이다. " 신세 " 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권정생이다....
얼마전에 권정생 선생님의 얘기를 사적으로 들었어요. 참 아픈 얘기들이었는데요. 이렇게 또 악담님 통해서 좋은 글 보게 되네요.
각자 유언장 을 써보는것도 좋을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