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행복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기며니
기며니 · 내 글이 돈으로 바뀌어야 먹고 살지.
2023/10/13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직원들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일했다. 그 흔한 사내정치도, 알력다툼도 억 단위로 굴러들어 오는 돈 앞에서는 바퀴벌레처럼 소멸됐다. 일이 적은 건 아니었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잠시 짬이 나면 한숨을 쉬면서 직원들은 명품을 온라인으로 쇼핑하곤 했다.

"월급이랑 보너스가 통장에 쌓이는데 돈 쓸 시간이 없네." 직원들은 행복한 투정을 나누며 뭘 해도 잘 되는 기쁨을 만끽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는 현장을 매일 목격했다. 전국 각 영업점에서 새로터진 온천처럼 따끈따끈한 투자금이 쏟아졌다. 노력과 경쟁, 쥐어짜기로 얻은 성과가 아니어서 더 달콤했다. 각 지점들은 물 들어올 때 열심히 노를 저으며 스트레스 없는 성과 자랑을 이어갔고 모두가 옆 부서와 타인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부담 없이 칼퇴근하던 조직 말단 경리와 매일 야근하던 부장이 중요한 프로젝트의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정도로 의사소통 구조도 평등했다. 전체 영업점 관리를 맡은 증권사 본사 마케팅팀 인턴이었던 나 역시 존재만으로 존중과 환영을 받았다.

처음 맡은 업무는 신상품 판매 실적을 기준으로 순위가 높은 지점에 치킨과 피자를 보내주는 일이었다. 수천 개의 엑셀 열과 행을 정리해 계산식을 몇 가지 쓰고 나면 간식을 받을 지점이 선정됐다. 사수에게 선정 과정과 결과를 보고하고, 오후에 따끈한 간식이 간다고 영업점에 연락하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 매일이 잔치 같은 회사에서 업무를 하니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마케팅팀이 한 해 중 가장 바쁜 때는 VIP와 임원, 사장단과 함께 서울을 둘러싼 네 개 산맥을 하루에 등반하는 행사를 준비하는 시기였다. 증권그룹 회장님의 산사랑은 유명했다. 직원과 고객이 개미떼처럼 줄지어 산봉우리를 등반하는 전통은 실적 천국의 신성한 제의처럼 느껴졌다. 회장과 함께 새벽부터 하루종일 욕 나오게 힘든 산행을 함께하는 여덟 시간은 승진행 고속열차였다. 그래서 산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의 명단과 누구가 누구와 같은 조인 지는 모두의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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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세상을 깊이 읽고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전업 작가, 프리랜서 기고가로 살려고 합니다. 모든 제안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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