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쌀 하나의 우주, 그 안의 사랑 여행 중 장일순 선생 옛집에 들른 김에...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4/05/18
좁쌀 하나의 우주, 그 안의 사랑
   여행 중 장일순 선생 옛집에 들른 김에...

친구에게 전하며 ..

1994년 유독 많은 인물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 해 겨울 문익환 목사님이 가셨고 김남주 시인도 병고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고 한창 더운 여름에는 한국 현대사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추앙과 저주가 철벽으로 공존하는 이름 김일성 주석이 숨을 거뒀지.  그리고 또 한 명의 큰 인물이 이 해 5월 22일 치열한 삶을 마감했다.  장일순.  무위당(無爲堂) 장일순.   들어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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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강원도라도 영동과 영서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말씨도 다르고 기질도 다르고 생활 패턴도 다르지.  오랫 동안 원주는 영서 지역의 중심이었어. 서울에 가깝고 깊은 산에 면해 있어서 유사시 숨기도 좋다 해서 선비들이 즐겨 살았다는 기록도 있지만‘반역향’의 오명을 쓰고 강원도가 ‘강춘도’로 바뀐 적도 있어.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의 앞글자를 딴 거지만 원주 대신 춘천을 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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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반역향이 아닌 곳이 어디 있겠냐마는.   적어도 유신 정권에게 원주는 그야말로 ‘반역향’이었어.  유신 시대 가장 강력한 반유신운동의 진원지가 지학순 주교로 대변되는 원주의 민주화운동 세력이었거든.  장일순 선생은 그 핵심에 서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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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이라는 호답게 그분은 인위적으로 뭔가를 하지 아니하고 물 흐르듯 순리를 좇아 스스로를 비우면서도 ‘좁쌀 안에 우주가 있다’는 말처럼 사소한 것에도 창대한 이치가 숨어 숨쉬고 있음을 역설했던 그분은 20대 때 이미 아인슈타인과 교류하며 ‘하나의 세상’을 꿈꾸던 당찬 젊은이로서 원주의 대성중고등학교를 세우는 주역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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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때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협동조합도 만들고 국회의원 출마도 했지만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주장하다가 빨갱이로 몰려 옥살이도 했지.  이 어처구니없는 옥고를 경험하면서 그는 일생의 진로를 바꾸게 돼.  말했다시피 70년대에는 반유신의 선봉이었고 그 이후는 생활운동과 한살림 운동을 통...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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