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의 고고인류학 182편 - 지난 31일 터키 지방선거, 에르도안이 이끄는 정의개발당의 참패와 의미

알렉세이 정
알렉세이 정 ·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연구교수
2024/05/24
어제인 3월 31일 터키에서는 지방선거가 치뤄졌다. 총 1,393개의 행정구역에서 주지사 30명, 시장 1,363명, 주의회의원 1,282명, 시의회의원 21,001명을 선출하는 선거로 일반적인 한국의 지방 선거가 아닌 대규모 선거라 볼 수 있다. 이는 터키의 정치적 특성에서 기인하고 있는데 터키에는 본 의회인 터키 대국민의회(Türkiye Büyük Millet Meclisi)가 있고 대도시자치단체(büyükşehir belediyeleri)라 불리는 지방 자치로 분권화가 되어있다.
사진 : 2024년 3월 31일 터키 지방선거 이스탄불 주지사 선거의 결과, 사진출처 : reddit, By fasistkomunistdinci

각 임기는 5년이고, 행정구역을 기반으로 한 87개 선거구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된다. 따라서 각 지방의 자치단체와 권역별 비례대표들의 발언권이 강한데 이들의 발언에 따라 대통령의 발언 또한 그 권위가 강해지느냐와 약해지느냐에 달려 있다. 1년 전 치러진 대선에서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한 이후 처음 치러지는 터키의 전국 단위의 선거로 에르도안과 현 이스탄불의 시장인 에크렘 이마모울루에게는 매우 중요한 선거일 뿐더러 현 터키의 난국을 그대로 대표하는 모습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2019년 터키에서는 지방 선거가 진행된지 얼마 되지 않은 8월 31일, 내무부에서 테러 단체와의 협력 혐의로 동부 아나톨리아 지방에 있는 디야르바키르, 반, 마르딘 3개 주의 쿠르드계 민선 주지사의 직책을 박탈한다고 밝히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PKK와의 연관성이 있다는 혐의를 비롯해 총 8개의 죄목으로 주지사들을 체포하고 일방적으로 중앙 정부 출신 관리인들을 시장 대행으로 앉히게 된다. 

당시 민선을 통해 선출된 주지사를 불명확한 혐의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해임했기 때문에 이는 당시 2019년 이스탄불 선거에서 참패한 에르도안의 치졸한 정치보복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졸지에 3명의 주지사가 직을 잃었기 때문에 쿠르드계가 대부분인 인민민주당은 물론이고 터키의 야권,  EU, 국제인권감시기구 등에서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철회를 요구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를 깡그리 무시했다. 

그러나 EU, 국제인권감시기구 같은 집단 서방의 세력이 소속된 집단들이 쿠르드 과격조직은 PKK를 지원하고 있는 사실을 에르도안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터키의 중앙 정계를 분열하려고 심어 놓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는 인민민주당의 행태를 그리 곱게 보지 않았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 이 지역에서 다시 지방 선거가 열리게 됐다. 이들 주에서는 다시 인민민주당 출신 주지사들이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쿠르드족이 대다수인 디야르바키르, 반, 마르딘에서는 인민민주당이 전통적으로 강세인 곳인데 에르도안과 정의개발당의 다음 대응은 PKK와의 연루설 말고도 집단 서방의 지원을 받았을 것으로 얽어맬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사실 이번 지방 선거의 최대 승부처는 이스탄불 주지사 선거이고 현재 공화인민당의 에크렘 이마모을루가 현직 주지사 및 시장 직을 지내고 있는데, 이번 재선에 실패하면 나락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이번 재선에 성공하면 전에 언급한 것처럼 2028년에 있을 대선에서 에르도안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의 정치성향이 친서방인지는 아직 파악이 불가능할 정도로 에르도안의 정치성향과 비슷하다. 아직 이마모울루는 에르도안과 반대되는 성향의 정책을 내놓은 적 없었으며 에르도안의 외교정책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평가도 내리지 않았다. 전체적인 정치성향으로는 알 수 없으나 외교정책만큼은 에르도안과 비슷하다는 것은 맞는듯 싶다. 

실제로 이마모을루 주지사는 2019년 선거에서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서 공화인민당 후보를 격파하고 처음 당선되면서 자신의 주가를 높였고, 2023년 대통령 선거 출마 예상 후보군에 포함되어 가상 대결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을 상대로 줄곧 리드를 유지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에르도안의 입장에서는 그의 대권 역사상 가장 큰 정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각종 사법 리스크들이 걸려 있고 공화인민당 당내 분열 가능성을 우려해 실제 출마는 무산되었다. 

하지만 2023년 공화인민당의 대선 패배를 발판 삼아 당 장악력을 강화하면서 자신의 경쟁력을 더 끌어올렸다. 반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런 이마모을루 주지사의 기세를 꺾기 위해 무라트 쿠룸(Murat Kurum) 전 국토 환경부 장관을 후보군으로 내밀어 지원하고 있지만 사실 이마모울루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는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도 뚜렷이 나타나는데 공화인민당 이마모을루 주지사가 정의개발당 무라트 쿠룸 전 장관에 대략 4~5% 범위 내에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왔고 출구조사 때도 비슷했다.

결국 31일 당일 78.53%의 투표율을 보였고 작년 대선의 87%보다저조했다. 이번 선거에서 390명의 시장, 973명의 구청장, 50,336명의 무크타르, 즉 지방정부 수장을 선출하고 지방의회 · 시의회 의원도 선출했다. 투표 결과는 야당인 공화인민당이 압승으로 종결됐다. 공화인민당은 37.74%로 전체 1위, 35명을 당선시켰고 1989년 선거 이후 35년 만에 득표율 1위를 탈환했다. 반면 정의개발당은 35.49%를 기록해 창당 이후, 처음으로 2위로 떨어졌다. 

승부처로 꼽혔던 이스탄불, 앙카라 주지사 선거에서 각각 공화인민당 후보가 여론조사 이상으로 여유로운 격차로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즈미르, 부르사, 안탈리아와 같은 광역 도시에서 모두 승리했다. 지난 2023년 선거 대비 중앙 아나톨리아에서도 주지사, 시장직을 다수 탈환하면서 대거 약진했다. 2023년 대선과 총선에서 패배한 이후, 자강론을 앞세운 야당 연합인 국민연합(Birleşe birleşe kazanacağız)이 해체되는 악순환을 겪었다. 

이후 공화인민당의 외즈귀르 외젤(Özgür Özel)은 대선에서 참패한 대표 케말 클르츠다로울루(Kemal Kılıçdaroğlu)의 실책을 규탄했으며 11월 5일, 전당대회에서 결선투표 끝에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를 812 : 536으로 꺾고 대표가 된다. 이처럼 케말 클르츠다로울루(Kemal Kılıçdaroğlu)를 비롯한 지도부들을 대거 교체한 이후 치른 첫 선거에서 완벽한 성과를 거두면서 외즈귀르 외젤(Özgür Özel) 대표와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주지사 중심의 신(新) 체제가 양립되어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2028년 대선을 통한 정권 교체 준비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외젤과 이마모울루 간의 2028년 대선을 위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측되어 진다. 한편 에르도안은 여러모로 정치적 위기를 맞이할 전망이다. 우선 개헌을 통해 조기 대선 치뤄 자신의 집권 기간을 2033년까지 연장하는 것에 제동이 걸릴 것이다. 이는 절대 다수의 공화인민당과 쿠르드계 인민민주당이 개헌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일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라크와 공동협정을 통해 PKK에 대한 일소 문제도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터키는 군을 동원하기 위해서 대국민의회나 대도시자치단체들의 동의를 얻어야하는데 이 상태에서 공화인민당이 정의개발당과 에르도안을 지지해줄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정의개발당을 억누르기 위해 인민민주당과의 공조가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일찌기 지방 선거 전에 공화인민당의 외즈귀르 외젤(Özgür Özel) 대표와 인민민주당의 페르빈 불단(Pervin Buldan)이 회합을 갖기도 했다.

이는 만약 공화인민당이 지방선거에 압승하지 못하고 정의개발당에 밀리는 자세에 나선다면 그 보험용으로 인민민주당에게 연정을 제안하는 것은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터키 내 과도한 인플레이션 문제도 발목을 잡고 있다. 2023년 11월을 기준으로 인플레이션율이 62%까지 치솟은데다가 미국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는 연일 계속해서 추락 중이다. 여당인 정의개발당이 이번 선거에서 패한 이유가 과도한 인플레를 잡지 못해서인데 사실 터키 전국에서의 물가는 비정상으로 뛰고 있다. 

기존의 저금리 정책을 포기한 이후 금리를 계속해 엄청난 수준으로 높였고 2023년 11월 23일, 금리를 무려 40%까지 인상하더니 2024년 3월을 기준으로는 50%를 찍은 상황이니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식량, 공과금, 임대료, 관광지 물가 등은 살인적이고 필자 또한 연구를 박물관 가는 티켓 가격을 보고 고민하고 있을 정도다. 실제로 터키에 와서 박물관을 거의 가지 않은 이유가 티켓 값이 이전에 비해 살인적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한편 에르도안은 이번 선거 참패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미국이나 서방의 제재로 인한 인플레는 불가항력이라는 부분도 있고 그 분노는 당연히 집권당이 책임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만 공화인민당도 이를 어느 정도 해결하지 못하면 4년 후, 똑같은 심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터키가 인플레를 어느 정도 해소하고 나아갈 길은 러시아, 이란과의 협력 외에는 답이 없다. 공화인민당은 기존의 친유럽, 친서방적인 행보보다는 러시아 및 이란과의 연대, 범투르크연합이 가지고 있는 최대 이점인 지정학적인 강점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에르도안 또한 이를 활용하여 러시아와 이란에 더욱 밀착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PKK 문제는 서로 대립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어 보인다. 

🐮 🐄 🥛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얼룩소 시작하기

유라시아의 역사학자 고고학자, 인류학자. 역사, 고고, 인류학적으로 다양하게 조사, 연구하기 위해서 역사, 문화적 체험을 중시하고 하고 있다
350
팔로워 16
팔로잉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