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대상이 아니라 도리어 필요한 '운동'
2024/03/06
인(因)으로 맺히니 과(果). 때문에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불가피로 곧 책임일 테다. 그러니까 이를 의식하는 데 한하여, 인류를 단위로 소위 운명공동체로 자리한 '우리'. 그러니 역사야말로, 미시에서 거시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집단의 이익 너머를 바람직한 이상(理想)으로 가늠하고 구현하려는 몸부림의 흔적이라 이를 수 있겠다.
그런데 예서 책임을 흐릿하게, 나아가 감추어 기어코 지우듯 덜어내며 체계로 자리하니 다름 아닌 자본제[Capitalism]. 이웃에 대한 책임, 뚜렷하던 의식은 기억 저편으로. 초국(超國)으로 엮인 사슬 규모, 더욱더 불분명이기 십상인 소재(所在).
달리 보면, 일편에 면책과도 같은 형편 제공. 따라서 그 일편에 자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제도인 게 자본제. 체 게바라 일렀던 '불가능한 꿈' 곧 (앞서 언급한) 바람직한 이상을, 저 일편에 속하려는 욕망이 대신하니 책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던 처지로부터 벗어나 거리 두려는 고민에 치열한 치들이 '리얼리스트' 참칭.
그렇게 면책 지대로 나아가고자, 또 그 지대의 범위를 확장하자고 너나 할 것 없이 그를 가능케 하는 자본(특히 화폐) 소유에의 달음질 연속. 하여 성립인 대세(大勢)요 주류. 각 사람, 타고난 육신의 즐거움 곧 제 한 몸 편리/편의 누리기에 치중. 소위 욕망하는 인간으로 지위 격하 자처, 무릅쓰며 자발적 투신 지경.
상호로 맞물리니 가능한 체계는 굳건한 현실로 지속. 작든 크든, 적든 많든 누리는 당장의 지위와 처지, 못 잃는다는 의지가 또 한 축으로 서니 체계는 공고할 밖에(그러니까 실은 체계가 지탱하는 게 아니라 각 사람의 굳은 신앙이야말로 체계를 지탱, 떠받치는 근간). 경쟁 중 마모되게 마련인 개인의 비명은, 자본제 성찰을 촉구하는 파열음으로 규합되지 못하고 흩어지기 일쑤. 묻혀 사라지고 마는 잡음 처우*.
이런 현실, '나'의 누림/충족이 비롯하는,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로 말미암는, 근원이 사슬 이면(異面)에 자리하는 현실. 이를 더는 살피지 않아도 ...
그런데 예서 책임을 흐릿하게, 나아가 감추어 기어코 지우듯 덜어내며 체계로 자리하니 다름 아닌 자본제[Capitalism]. 이웃에 대한 책임, 뚜렷하던 의식은 기억 저편으로. 초국(超國)으로 엮인 사슬 규모, 더욱더 불분명이기 십상인 소재(所在).
달리 보면, 일편에 면책과도 같은 형편 제공. 따라서 그 일편에 자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제도인 게 자본제. 체 게바라 일렀던 '불가능한 꿈' 곧 (앞서 언급한) 바람직한 이상을, 저 일편에 속하려는 욕망이 대신하니 책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던 처지로부터 벗어나 거리 두려는 고민에 치열한 치들이 '리얼리스트' 참칭.
그렇게 면책 지대로 나아가고자, 또 그 지대의 범위를 확장하자고 너나 할 것 없이 그를 가능케 하는 자본(특히 화폐) 소유에의 달음질 연속. 하여 성립인 대세(大勢)요 주류. 각 사람, 타고난 육신의 즐거움 곧 제 한 몸 편리/편의 누리기에 치중. 소위 욕망하는 인간으로 지위 격하 자처, 무릅쓰며 자발적 투신 지경.
상호로 맞물리니 가능한 체계는 굳건한 현실로 지속. 작든 크든, 적든 많든 누리는 당장의 지위와 처지, 못 잃는다는 의지가 또 한 축으로 서니 체계는 공고할 밖에(그러니까 실은 체계가 지탱하는 게 아니라 각 사람의 굳은 신앙이야말로 체계를 지탱, 떠받치는 근간). 경쟁 중 마모되게 마련인 개인의 비명은, 자본제 성찰을 촉구하는 파열음으로 규합되지 못하고 흩어지기 일쑤. 묻혀 사라지고 마는 잡음 처우*.
이런 현실, '나'의 누림/충족이 비롯하는,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로 말미암는, 근원이 사슬 이면(異面)에 자리하는 현실. 이를 더는 살피지 않아도 ...
'육면각체'를 쌓아 올리는 '건축'을 '무한'으로 거듭하는, 사각(四角)의 '광장' 사회,
그 속에서 저마다 자기 내면에 정주할 곳을 우선하여 가꾸도록 돕는 말·글.
이를 조력하는 동네서점.
생각[思]에서 깨달음[覺]에 이르는 여정을 돕는 책 그리고 사람이 함께 하는 공간,
사각공간(思覺空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