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로 위장취업한 작가, 그가 마주한 딜레마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4/03/05
종종 마주했던 장난이 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도 이따금은 그런 장난과 마주한다. 말하자면 신입 놀리기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선배 중 하나가 저도 신입인 양 장난을 친다. 신입이 겪게 되는 여러 일을 며칠, 혹은 몇 주 간 함께 하다가는 어느 순간 본색을 드러낸다. 제가 실은 누구라고, 신입보다는 한참 선배라고 진실을 털어놓을 때, 그가 저와 같은 신입이라 철썩 믿었던 이는 낭패를 당했음을 직감한다.
 
장난은 장난일 뿐 누구를 괴롭힐 생각은 없었다 하겠으나 당한 이는 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를 철석같이 믿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해서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경우 그와 마음을 열고 사귀었던 순간들이 죄다 거짓으로 돌아가는 게 실망스러울 테다. 나는 진실로 상대를 대했으나 상대는 한 순간도 그러지 않았음을 알 때, 인간은 누구나 배신감을 느낀다.
 
그저 장난이 아닐 때도 있다. 한때는 노동운동을 독려하고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하여 위장취업 하는 이들이 많았다. 고된 노동현장 가운데 제 신분을 속이고 들어와 노동자를 조직하고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을 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에 이르는 한국 대학 운동권의 노동운동이 꼭 그러했다.
 
▲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 포스터 ⓒ 디오시네마

180일에 걸친 노동취약계층 잠입취재기

어디 노동운동뿐일까. 실상을 알기 위해 실제 현장에 잠입하는 기자며 저술가들 또한 적지 않다. 누구는 병원에서, 누구는 종교시설에서, 또 누구는 일선 노동현장에서 잠입취재에 돌입한다.

대의를 위한 작은 속임일 수 있겠다. 공익을 위하여 신분을 속이는 일에 누구를 해할 목적은 없다지만 자연스레 선의를 가진 이들을 속이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마음을 다친다면, 그 행동에 해악이며 악덕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두 세계 사이에서>는 위장취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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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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