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장애인 딸을 내 손으로 죽인 나쁜 엄마입니다

이창
이창 · 쓰고 싶은 걸 씁니다.
2022/12/21


  오래된 것에는 누적된 세월의 향이 풍긴다. 낡고 늙은 만큼 뭐랄까, 마음이 편안해지는 정적의 향 말이다. 몇 해 전 요양 병원에 들린 나는 오래된 책방과 같은 그 냄새가 은은한 초라도 되는 마냥, 퍽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할머니의 굳은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눈 내린 듯 하얀 머리와 간간이 들려오는 티비 소리. 평화로운 아침이 이어지는 중 들릴 듯 말 듯 무언가 응얼대던 그녀는 대뜸 병원복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앙상한 주먹을 내밀었다.
  "어디서 왔어? 고마우이..."
  비닐에 싸여진 작은 초콜릿 하나. 얼마나 간직하고 계셨을까 이미 녹아 물렁물렁하다. 할머니는 어깨를 누르던 내 손 안에 그걸 밀어넣고 얼굴을 한번 멀뚱히 보시고서야 TV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여전히 손은 꼭 맞잡은 채로. 그러고 보면 나는 멋쩍게 웃기만 했을 뿐 고마워요 라는 말도 제대로 못한, 반나절 뒤면 사라지는 하루 봉사자에 그쳤을 뿐이다.

​  거기서 일하시는 간호조무사 분은 점심을 먹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로 어떤 분들이 오시는지, 어떤 사연을 가지고 들어오시는지, 또 가족들이 어떤 표정으로 여기에 맡기고 가는지.
  "이 병원 안에서는 모두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만 같아요."
  "그럴 리가요, 바쁠 땐 얼마나 바쁜데. 문제는 그게 보통이라는 거지."

  몇 가지의 마른 반찬과 다소 밍밍한 국. 두어 젓가락 깨작거리던 나는 괜히 고개를 들어 병원 실내를 빙 둘러본다.
 "그래도 고마워요. 젊은 친구들이 한 번씩 와서 도와주고 하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사실 벅차거든요, 되게."
 
머쓱한 말에 얼른 다시 수저를 든다. 그냥 부대에 있는 게 지겨워 동기애들과 일과나 뺄 생각으로 온 건데. 아마 군인이 아니었다면 이런 곳에 구태여 시간 내 올 생각도 안 하고 살았을 텐데 난.
  "한 분이 생각나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맡기고 가셨거든요. 처음 병원에 오셨을 때 얼굴이 많이 상해있었어요. 우리야 이게 일이지만 얼마나 고생했겠어요 혼자서. 어느 날은 잠깐 한눈 붙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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