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인간 ‘비정규직’

웅보
웅보 · 비자발적 전업주부
2022/11/21
가성비 인간 ‘비정규직’
   
   
‘가성비’, 한정된 자원 내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얻어내기 위해 고민하는 소비 습관에서 나온 단어이다. 정확히 언제부터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 단어에 담긴 우리의 고민은 단어의 역사보다 분명 오래되었다. 같은 가격이면 좋은 물건, 같은 물건이면 저렴한 가격. 많은 이들이 의식주를 막론하고 조금이라도 더 우수한 가성비를 얻기 위해 애쓴다.
   
‘비정규직’, 기업이 찾아낸 가장 쉽고 빠른 가성비 상품이다. 같은 일이라도 임금을 덜 주기 위해, 덜 중요하다 싶은 일은 훨씬 더 적은 임금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가성비 노동자다.
   
   
비정규직의 역사는 김영삼 정권 당시 생산과 노동의 ‘유연화’를 추진하면서부터 시작된다. IMF 대공황을 지나며 국가와 기업은 모두가 다 같이 생존하는 그림은 진작에 포기하고 대신, 가장 많고 대체하기 쉬운 부분 즉, 노동자부터 잘라내어 ‘기업’이라는 껍데기만은 살려내는 그림을 선택한다.
   
당시 시시각각 무너져 내리는 경제 상황 가운데 당장 우리 회사도 내일 부도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던 노동자들은 ‘유연화’라는 모호한 단어의 본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회사도 살고 우리도 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정치인과 화이트칼라의 말을 믿었다.
   
근로계약서만 다시 쓸 뿐, 나머지는 다 똑같다고 했다. 계약서에 적힌 회사 이름이 다른 것, 계약기간이 2년 뒤인 것 등은 법을 지키기 위한 사소한 문제이며 지금까지처럼 그대로 쭉 일할 수 있다고 했다. 막상 2년이 지나자 누구는 쫓겨나고, 누구는 같은 계약서에 다시 서명했다. 정작 그렇게 동료의 등에 칼을 꽂은 화이트칼라도 노동유연화의 다른 무기 ‘정리해고’의 칼을 피할 수는 없었으니 참 웃지 못할 현실이다.
   
   
그렇게 20년이 넘게 흘렀다. 이제 비정규직은 거짓말을 넘어서 만연한 꼼수가 되었다. 비상시 업무에만 비정규직 고용이 가능하다는 법을 2년만 쓰고 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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