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에서 담화의 무게

김민하
김민하 인증된 계정 · 정치병연구소장
2023/01/17
강제동원 관련 갈등 해소의 조건으로 등장하는 일본 정부의 사과는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할까? 우리 법원 판결의 취지를 따르자면 강제동원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65년도에 다 해결했다는 것은 우리 법원 판결 취지가 아니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 정부가 청구권협정의 틀 안에서 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법원 판결 취지를 거스르는 것이다.

'통절한 반성과 사죄'라는 표현과 과거 일본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한다는 것은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책임 인정과는 거리가 멀다. 일전의 글에서 밝혔듯 그건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거다. 가만히 있겠다고만 해도 사죄가 된다는 것이다. 어느 언론 보도를 보니 일본 사회가 우경화 하는 상황에서 과거 정부 입장 계승을 다시 한 번 밝히는 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는 평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볼 땐 그렇게 말하는 것은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

'통절한 반성과 사죄'라는 표현은 1995년 무라야마 담화로부터 비롯됐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통절한 반성과 사죄' 표현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아시다시피 무라야마 도미이치는 사회당 위원장 출신으로 자민당과 신당사키가케의 연정으로 총리가 되었다. 이른바 지샤사 연정인데, 총리 투표에서 자민당이 진 결과에 따른 것이다. 사회당은 전통의 좌익 계열답게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전향적 태도를 고수해왔는데 이런 사정이 무라야마 담화가 나오는 과정에 영향을 줬다. 

대개 이런 담화라는 것은 각의를 통해 결정한다. 우리로 치면 국무회의다. 정부의 공식 입장인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군 연루 사실을 인정한 고노 담화 역시 1993년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에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명의로 발표한 정부 공식 입장이다. 일본 정치의 현실에서 특히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정부 입장은 한 번 결정한 이상 뒤집기 쉽지 않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고이즈미 담화는 어떤가?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가 들어갔다. 전반적으로 무라야마 담화의 표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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