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를 못 먹는 삶: 아픈 몸 그리고 욕망 [눈 위에 발자국]

윤지슬
윤지슬 · 콘텐츠를 다루고 만듭니다
2023/02/19
내 병들은 암이나 사망으로 이어질 확률이 아주 높지만, 그렇다고 당장 이 병들이 수명을 줄이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나는 아주 오래 아픈 몸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가볍지 않은 병을 십 년이 넘게 앓았고, 동시에 그 시간만큼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 만성질환이 나의 정체성 그 자체는 아니지만,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제야 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안개가 걷히듯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를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한 문제들이, 병명이 다르더라도 이른 나이에 질병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 신체적 질환이 개인의 마음과 일상을 어떻게 침범하는지 알고, 인정하고 보듬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은 여럿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병이라는 것은 어떻게 포장해도 생생한 고통을 주는 분명한 실체다. 그러나 병을 가진 사람들이, 병증 그 자체를 넘어 불필요한 고통을 추가로 겪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우선, 만성질환자로서 내가 겪어온 부수적인 어려움을 살펴보고자 한다.
 
 오렌지 주스를 꿀꺽꿀꺽 마시는 삶: 욕망의 포기
 
 병이 하나 늘면, 그만큼 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난다. 이 단순한 한 문장 뒤에 숨겨진 많은 요소와 배경이 있지만, 나의 경험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아프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뜻밖의 어려움들이, 이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것들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나는, 돈과 여건이 주어진다 해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다. 종종 내가 죽는 날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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