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가 싫다 - 내재성, 외재성, 교차성

김다움
김다움 · 게을러요
2024/01/08
초등학생 때 '은따'였다. 보통은 잘 지냈는데, '잘 나가는' 애 한 명이 날 싫어했다. 걘 '쌍욕'을 잘했으며, '병맛' 문화를 빠르게 익혀 유행을 선도했다. <미친 도라에몽>, <어노잉 오렌지>, <욕쟁이 할머니>, 그리고 <써니>로 이어지는 '교과서'를 완벽히 체화한 그가 욕을 시작하면 나는 그저 듣기만 했다. 어느 날은 너무 분해 <써니>를 분석했다. 나미의 휘몰아치는 욕설을 연습했다.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같은 무기를 사용하면 적어도 대등한 싸움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론과 실전은 달랐다. '은따'는 길게 욕할 수 없다. 일단 버벅거리고, 힘들게 한두 마디 짜내도 곧바로 '반사' 당한다. 쌓아온 내공이 다르다. 곧 공격권을 뺏기고 응징이 이어진다. 나아가 화해랍시고 '싸움 놀이'를 하는데, 결국 주먹으로 맞는다. 사실 발상부터 틀렸다. 약자는 자신만의 무기가 필요하다. 강자의 기술을 따라 해봤자 평생 이길 수 없다. 불공정한 경쟁이다.

흔히 비평을 외재적/내재적 방식으로 나눈다.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 구분 자체가 불가능하다. 세계로부터 독립한 작품은 없다. 작품의 내적 구조는 정치성의 표현이다. 정치적 무관심조차 현 체제에 편승하기에 정치적이다. 더군다나 텍스트와 독자가 만날 때, 복합적인 맥락이 생겨난다. 상황을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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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언론을 전공하는데, 그다지 전문적이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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