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의 MBTI는 무엇일까?

초희
초희 · 먼 과거 타인의 삶을 큐레이팅합니다.
2023/11/26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호적한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보기 드문 릉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500여 년간 명맥을 이어간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의 릉, 건원릉입니다. 봉분 위에는 수많은 억새풀이 솟아 있어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늘 고향을 그리던 아버지를 위해 그의 다섯째 아들인 태종이 손수 함경도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와 봉분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하였던 전라도 전주 소재의 경기전
경기전 안의 태조 어진, 원본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이 지점에서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성계의 고향이 함경도라니요. 이성계는 전주 이 씨가 아니던가요. 이성계 집안이 전라도 전주에서 함경도로 이주하게 된 경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성계의 4대조 이안사가 전주 관청과 사이가 틀어지는 바람에 강원도 삼척으로 이주했고, 고려말 몽골의 침입 때문에 다시 함경도로 거처를 옮겼다는 이야기만 어렴풋이 전해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성계가 나고 자란 함경도는 전쟁이 난무하는 험악한 변경 지역이었습니다. 지금도 함경도는 북한과 중국이 국경을 아슬아슬하게 맞대고 있는 지역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각박한 환경이 아이러니하게도 이성계에게는 크나큰 기회가 되었습니다.

난세는 영웅을 알아보는 법이지요. 청년 이성계는 숱한 전투 속에서 이름을 드날렸습니다. 이때 고려는 북쪽으로는 중국 변방 민족의 침략에, 남쪽으로는 일본의 해적 집단인 왜구의 침략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려 정부는 국방을 엄히 다스릴 힘이 없었습니다. '송곳을 꽂을 땅조차 없다', 당시 고려 백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었어요. 나라의 운영을 책임져야 하는 관리들은 가난으로 울부짖는 백성을 수탈하며 날로 부를 쌓아가는 일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국가의 행정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니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것도 해당 지방의 몫이었던 것입니다.
함흥 본궁의 이성계 유품, 필름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렇게 혼란하던 시절, 말을 타고 자유자재로 적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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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와 대학원에서 사학을 전공했습니다. 전시 큐레이터를 거쳐 지금은 교육계 기업에서 역사 교과서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일을 합니다. 누구에게나 쉽게 가닿을 수 있는 F력 넘치는 역사 콘텐츠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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