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록 불편한 책, 입맛을 싹 잃고 얻은 것

구황작물
구황작물 · 실패가 일상인 비건 지향인
2024/03/27
고백하건대, 나는 개고기 마니아였다. 한 그릇으로 끝나는 법이 없었고 두 번째 그릇도 찰랑찰랑 넘치게 담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그릇을 비웠다. 심지어, 아빠 몫으로 남겨진 뚝배기까지 탐했다. 기억 못해도 좋으련만,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커다란 들통에 담긴 개 머리를 마주하고 난 뒤, 나의 패악은 끝났다. 그 자리에서 졸도했다 깨어난 뒤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개고기를 입에 넣지 않았다. 내 나이 열 살 전의 일이다. 

그날 이후 보신탕은 우리 집에서 영구 퇴출되었지만, 다른 고기는 그 혜택을 입지 않았다. 나는 꾸준히, 많이 먹었다. 내가 본 것이 돼지머리였다면 돼지고기를 먹지 않게 됐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이미 많은 돼지머리를 봤다. 어쩌면 그 앞에서 태연히 순대와 내장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저 익숙함의 차이였을까. 익숙함은 인간을 얼마나 마비시킬 수 있을지에 생각이 미친다. 깔끔하게 포장·진열되어 그것이 생명이었던 시절을 떠올리지 않게 하는 고기들. 이들이 그 자리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야멸차게 말하건대 이는 고기만을 위함이 아니다. 웃돈을 주고 유기농 채소를 고르는 건, 채소를 위함이 아닐 테니까. 

<고기로 태어나서>의 한승태 작가는 축산업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가 선택한 것은 통계가 아닌 '클로즈업'이다. 통계는 이해하기 쉽지만 금방 잊게 되고, 통계로서 비극을 알고 고통을 이해했다는 만족감은 계속해서 의심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동력을 감소시킨다는 설명이다. 

그는 클로즈업을 통해 "우리의 멱살을 그러쥐고 현장 한 가운데로 뛰어"(p10)들었다. 말 그대로다. 저자는 직접 닭, 돼지, 개의 농장에서 일하며 보고 겪은 내용을 상세히 기록했다. 방대한 내용을 모두 옮길 수 없지만, 내게 인상 깊었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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