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을 바라보며 연산을 한하노라 .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2/07
 용산을 바라보며 연산을 한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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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9대 임금 성종은 여러 결점도 있었지만 성리학적 이상군주에 근접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본인 역시 지긋지긋해하면서도 꼬장꼬장한 대간들, 말 많은 선비들의 말을 꼬박꼬박 듣고 귀에 거슬리더라도 꾹 참고 넘어가면서 언로를 틔웠다는 사실이다. 이 역시 왕이 되기 어려운 팔자였던 자신을 왕위에 앉힐 수 있을 만큼의 권력을 보유했던 한명회 등 훈구 공신들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기동이었다고 하지만 성종의 인내력과 경청(敬聽)의 힘은 경의를 표할만했다.  그런데 그 아들 연산군은 180도로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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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균이 연기한 연산군 - 세계일보

즉위 초반, 중신 노사신이 절에서 재를 올린 일을 두고 성리학 근본주의에 불타는 젊은 관원들이 들고 일어나자 노사신은 별 걸 다 가지고 난리라는 식으로 무마하고 연산군도 그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홍문관 부제학 성세명 등은 너 잘 걸렸다는 식으로 노사신 탄핵 상소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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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신이 여러 조정의 훈신(勳臣)으로 정승의 자리에 오래 있었으니 착한 도리를 여쭈어 새 정치를 보좌하는 것이 그의 직책입니다. 대간과 시종(侍從)이 입을 다물고 말을 못하게까지 하니, 이것은 옛날 간신(奸臣)이 반드시 먼저 임금의 귀와 눈을 막고 가려 위아래가 서로 통하지 못하게 하고서 저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던 자들의 써 오던 꾀입니다. 신민들이 좋은 정치를 바라는 날에 불공(佛供)을 맨 먼저 하는 것이 이미 옳지 못한데, 또 대간·시종의 말을 아뢰지 못하게 하시는 것은 조정의 복이 아닙니다.”

노사신의 절에서 재를 올린 것은 작다면 작지만 시비를 걸자면 걸 수도 있는 문제였다. 조선은 철저하게 유교 중심을 표방한 국가이고 속사정이야 어떻든 공식적으로는 불교를 탄압하던 국가였으니 그런 조정의 대신의 행동으로 책을 잡자면 잡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즉 옳고 그름을 떠나서 대간과 선비들이 왕에게 진언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그 왕이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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