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비양심적 병역수행?

최재영
최재영 · 정치의 한복판에서 철학하기
2021/10/09
저는 군인의 양심을 철학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썼던 글에서처럼 군인은 전장에서 살인에 대한 양심의 딜레마를 겪습니다. 적을 살상하지 않으면 명령과 군인으로서 의무를 어기거나 나와 내 전우를 위험에 빠뜨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적을 살상하자니 평생 진리로 알고 살던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게 됩니다. 그래서 군인은 내면적인 난관에 빠지고, 그러한 난관을 탁월하게 극복한 사람들 즉 전투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람들은 존경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어떤 연구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적 전투원에게 제대로 총을 쏘았던 전투원의 비율을 약 15퍼센트로 집계했습니다. 열에 한두 명만 적 전투원을 제압하는 데 ‘쓸모’가 있던 군인들이었고, 나머지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죠.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낮은 비율의 원인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내가 죽을까봐 남도 못 죽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저 ‘남을 죽일 수 없어서 못 죽인다’는 겁니다. ‘공격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반응은 양심에서 비롯됩니다.

양심이란 무엇일까요? 양심에 대해 법학자들이 말하는 바와 철학자들이 말하는 바가 다소 다릅니다. 먼저 법학에서 말하는 양심부터 살펴봅시다.

우리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현상을 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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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이제는 의회에서 밥벌이하며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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