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아들의 교회 탈출기 (6)

이화경
이화경 · 프리랜서 작가
2024/04/15

수업 첫날 풍경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침 자습 시간. 사각사각, 연필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아이들의 책상엔 수학 정석 책이 놓여 있었는데 대부분 ‘실력 수학1’이었다. 수학1은 2학년용이었다. 1학년 땐 공통 수학을 푸는 게 정석이었다. 내 책상에 있었던 것도 당연히 공통 수학이었다. 그것도 ‘실력’이 아닌 ‘기본’. 왜냐. 난 문과니까. 알고 보니, 녀석들은 이미 중학교 때 공통 수학을 다 뗐다. 나는 너무 기가 막혔다. 여기 과고 아니라 외고잖아. 다들 왜 이러나. 

그래도 수업은 교육부 스케줄을 따라 가겠지 싶었다. 웬걸. 공통 수학은 당연히 뗐다 치고 수업이 진행되는 거다. 게다가 수학 선생은 강남 학원에서 제일 잘 나가는 강사란다. 뭐라고 떠드는데 도무지 뭔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겐 수학 시간이 외국어 시간이나 다를 바 없었다. 빠르면 고1 2학기, 늦어도 고2 1학기 때까지 고등학교 3년 과정의 진도를 모두 빼는 게 당시 대원의 스케줄이었다. 그 후엔 교사들이 따로 편집한 교재나 프린트 물을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시간표상에 존재하는 전공어 수업 시간과 실제 수업 시간이 달랐다. 예를 들어 독일어 문법 과목이 일주일에 여섯 시간씩 할당되어 있다면, 세 시간만 전공어 수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수능 과목으로 대체되는 식이었다. 이 학교는 오로지 대학 입시였다. 입시를 위해 모든 커리큘럼이 맞춰져 있었다. 편법을 쓰면서까지. 

첫 중간고사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평균 80점 대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중학교 때 받던 점수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그 점수면 10등 대는 될 테니까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수가. 꼴찌에서 두 번째, 세 번째 정도 되는 거다. 아니, 도대체 반 평균이 어느 정도길래 80점대를 맞고도 꼴찐가 싶어서 봤더니 98점. 반 평균이 98점이라는 거다. 이 미친 학교에서 적어도 20등 안에 들려면 98점 이상을 맞아야 한다는 소리다. 중학교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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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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