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적 세계와 영화적 도시 -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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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문화비평
2023/11/09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도시 장면

만화적 세계와 영화적 도시 -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풍경들

필립 케이 딕의 소설에서 도시는 눈에 띄는 요소가 아니다. 딕은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하여 많은 헐리우드 영화의 원작을 제공했으나, 그의 소설들은 의외로 시각적 묘사에 인색하다. 저자는 대체로 지루하지만 차마 익숙해질 수 없는 세계에서 미쳐가는 인물들의 주관적 시점을 따라 소설을 전개하며, 덕분에 독자는 빈번하게 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고 실제로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적 무능력으로 가장 고통받는 것은 소설 속 주인공 자신이다. 그는 심리적 망상과 초월적 계시, 기술적 환상과 화학적 환각 사이에서 현실을 파악하고 그에 대처하는 데 거듭 실패한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를 믿을 수 없다. 이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서 촉발되는 심리적 드라마가 딕의 소설들을 견인하는 주된 원동력이며, 그것을 완전히 비현실적인 판타지나 미친 사람의 장광설이 아니라 무언가 그럴 듯한 이야기로 구성하기 위해 SF적 설정이 도입된다.

딕이 구축하는 세계는 현실에서 좌절된 욕망을 충족하는 테마 파크도 아니고 사변적으로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순수한 사고 실험도 아니다. 소설의 주인공과 독자는 모두 제한된 채널로 불투명한 세계를 더듬거리며 롤러코스터와 같은 공포와 쾌감을 공유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도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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