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결)소시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각자 나름의 논리 - 이호철의 <소시민>

윤지연 · 교사
2023/11/20
한국전쟁 당시 가난과 굶주림에 일자리를 잃은 아버지가 딸을 업고 식당 앞을 기웃대는 모습. 1951년 부산 서면. (부산시립미술관)

(종결)소시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각자 나름의 논리 - 이호철의 <소시민>

부적응으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는 사상가도 아니고, 생활력의 화신도 아닌, 그럼에도 자신 만의 논리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신씨는 상당히 독특한 인물 유형이다. 그는 세상에 무던하게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그는 반 넘어 능숙한 일본말을 사용하고 왜정 때의 이야기를 곧잘 늘어놓는다. 현실에 살기보다는 과거의 기억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이러한 인물형은 이 작품이 쓰일 1964 굴욕적인 한일협정과도 맥을 같이하여 일재의 잔존을 보여준다. 화자 ‘나'는 과거 일제 시기를 회상하는 그의 말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신씨의 삶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 모습을 보인다. 

다음으로 안온한 불빛을 내뿜는 곳이자, 인물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완월동 제면소 주인 가족들은 세상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의식하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양상을 보인다. 주인은 미국 자본주의의 수혜로 운 좋게 부유해질 수 있었으나, 그뿐 그는 실제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밝지 못했고 국수 장사는 점점 어려워진다. 주인 가족을 작가가 동물에 비유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노파와 주인의 형이 전선에 있는 기승이를 걱정하며 함께 울 때, 또 주인 마누라와 노파, 동회서기를 때리는 주인을 동물적으로 묘사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주인 마누라의 정욕에 따른 행동과도 연관지어 볼 때, 화자는 이들의 삶을 그저 욕망에 따른 동물적 삶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늙어 가는 어미와 늙어 가는 아들 사이가 어쩐지 사람 같아 보이지 않고 코끼리 같은 것으로, 단순한 동물적인 것으로 보였다. (268쪽) 

어둠 속에 펑퍼짐하게 뻗어 있는 거리는 커다란 늙은 짐승 같았다. 어두운 한길에 질질 끌고 끌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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