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중국인 혐오 담론 생성

말랑파워
말랑파워 · 나는야 용소야 나만의 길을 가련다
2023/08/06
1920년대 상하이 와이탄의 모습. 개항과 더불어 황푸항 서쪽 강안이 영국 조계지로 설정되면서 서구식 건물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섰다. 현암사 제공

1920년대 중국인 혐오 담론 생성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화공들로 인한 중한 노동자들 사이의 충돌은 빈번했다. 이에 따라 1927년 화교습격사건이 전면적으로 일어나 군산·인천 등지에서는 중국인 살인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이처럼 조선인과 중국인의 충돌은 단순하게 임금문제로 귀결하면 안 된다. 여기서 무시하면 안 된다는 점은 1920년대에 들어 일제는 끊임없이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조선인의 중국인에 대한 불만을 이용하여 중국인 혐오 담론을 생산하여 강화시켰다. 

여기서 『동아일보』에서 “중국”을 키워드로 기사를 찾아보면, 1922년까지 중국의 정치 상황에 다해서만 소개하였다. 그러나 이중에서 흥미로운 글이 있다. 그것이 바로 「中國勞動者追放에 對하야 朝鮮人도 覺悟가 必要」( 『동아일보』, 1922.8.22.)이다. 이 글에서 다음과 내용을 담고 있다. 
   
東京政府에서는 明治三十二年十二月內務省令에 依하야 全國에 散在하는 中國勞動者에 對하야 退去를 命令한바 此에 對한 中國의 輿論이 沸騰하며 日本內地에 在하야서도 人道의 觀念을 有하고 正當한 感情을 持하는 者는 非難의 聲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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