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달아주고 싶은거야
2024/05/19
"날개를 달아주고 싶은거야"
1998년 어느날, 첫 아이를 낳고 산휴 2개월을 쉬다 돌아온 A선생이 나한테 심각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며 따로 불러내서 한 말이다. 대뜸 저 말이 무슨 뜻인가 궁금해서 의아한 표현을 지었더니 약간의 보충 설명을 보탰다.
"아기 말이야."
"아, 그렇지. 아기."
"아기가 자는 모습을 보면 천사 같아. 그런데 날개가 없는거야. 그래서 이 아이한테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싶다 이런 생각이 문득 드는 거야."
"그럴 수 있지. 그게 문제가 돼?"
"아니, 어떻게 그게 문제가 아니야? 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비참하고 그런데?"
A선생은 지금은 연락 끊어진지 20년이 넘은 여사친이다. 2011년 겨울에 잠깐 봤지만 그야말로 얼굴만 보고 만 것이니 끊어짐 상태가 계속 된 것으로 봐야 한다.
A는 대학 시절 다른 과 학생회장이었다. 나는 우리 과 학생회장이었고. 그래서 사범대학교 운영위원회에서 같이 활동했다. 운영위원회라 함은 각 학과 학생회장들과 단과대 학생회장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말한다.
당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은 이른바 '우수교원' 확보 방침에 따라 수업료를 면제해주었다. 반값 등록금에 무시험 발령까지 내준다고 하니 사범대학은 공부는 잘하는데 가난한 집안 학생들이 집중되는 곳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긁어 보아도 이 학생들이 졸업하고 교직으로 진출 안한다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가난한 수재들이 모이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다시 과회장까지 할 정도 운동권이라면 대체로 중산층 이하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도곡초-영동중-중동고-서울대 로 이어지는 배경을 가진 나는 나의 소부르주아 근성을 스스로 반성하며 열심히 그쪽 문화에 묻어들어가려 애썼다.
하지만 A는 대도초-숙명여중고- 서울대 로 이어지는 배경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운영위원회 끝나면 휘파람 불며 사라졌고, 담배냄새와 막걸리 냄새 퀴퀴한 뒷풀이 따위에는 굳이 참석하지 않았다. 운영위원회도 마치 내킬때는 오고 아니면 안오는 것 같이 듬...
31년 교직경력을 마무리 하고 명퇴한 뒤 독립출판을 꿈꾸고 있습니다. 청소년 인문사회 교양서를 많이 집필했지만, 원래 꿈은 소설가였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문제, 클래식과 록 음악에 관심이 많고, 170여개 산을 오른 40년 경력 하이커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