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두려우랴 출전하여라 - 세 이름을 가진 사나이의 10주기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5/11
무엇이 두려우랴 출전하여라 - 세 이름을 가진 사나이의 1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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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라는 빌런의 시대, 그 독재와 맞서 피어린 항쟁을 벌였던 80년대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몇 편인지 모를 스토리가 만개하고 수도 없는 명장면이 펼쳐지겠으나 내가 직접 보거나 전해 들었던 풍경 가운데 ‘노래’와 관련돼서 꼭 영화화됐으면 하는 순간들이 있다. 첫 번째는1983년 2월 대구에서 열렸다는 어느 기독교 청년 모임. 이 모임의 연사로 백기완이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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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주먹 싸움으로 누구에게 밀린 적 없는 강골로 8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였던 백기완은 YMCA 위장결혼식 사건 후 체포돼 극심한 고문을 받으며 40킬로그램대 말라깽이로 쪼그라든다. 죽을둥살둥하는 고문대 위에서 그는 그의 시 <묏비나리>를 읊조리며 생명줄을 가까스로 움켜잡았다. 이후 광주항쟁의 주역 윤상원을 추모하는 <빛의 결혼식> 테이프에서 황석영이 묏비나리의 일부를 가사로 만들고 대학가요제 출신 김종률이 곡을 붙이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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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사 백기완이 등장할 때 1983년. 학교에 정사복 경찰들이 진주해 있었고, 데모 한 번 하려면 인생을 걸어야 했던 그 시절의 대학생들은 걸어나오는 백기완 앞에서 마치 모세의 지팡이 맞은 홍해 바다처럼 갈라지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른다. 몇 년 사이 반으로 줄어들어 나이에 걸맞잖게 머리가 세어 버린 이 노래의 저작권자는 얼굴을 구기며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그 울음 사이로 높아가는 노래와 표정들.


2000년경이었던 것 같다. 5.18 무렵 일부러 광주를 찾은 적은 없었는데 우연찮게 회사 일로 발길이 그날 광주에 닿았다. 이른 전야제 행사였던지 아니면 어떤 시위의 뒤끝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모텔에서 나와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구경하던 내 눈앞에 장대한 풍경이 펼쳐졌다. 수도 없는 인파가 거대한 합창을 이루며 시내를 행진하는데 그야말로 남녀노소, 넥타이 맨 사람부터 아이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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