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중고 거래가 쉬워졌지만 사고 팔기는 여전히 어렵다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4/04/17


나는 내세울 게 별로 없는 터라 자기 수식용 문구로 ‘중고 거래 외길 20년’이라는 말을 쓰고 다니곤 했다. 약간 과장은 있지만 완전히 거짓말은 아닌 것이, 중고등학교 때부터 보드게임을 취미로 즐기며 잡다한 게임을 커뮤니티 중고 장터에서 사서 하고, 질리거나 잘 맞지 않는다 싶으면 도로 내다 파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별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한글판 보드게임이 쏟아지지도 않았고 해외 직구를 하자면 대단히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호된 비용을 지불하고 오래 기다려야 했던 데다, 심지어 한국어 번역 자료까지 따로 준비해서 문자 그대로 직접 ’패치‘해야 했으므로, 게임을 중고로 거래하는 일련의 과정은 그냥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스마트폰이 없던 때 공중전화를 쓰는 게 너무 당연해서 불편하다는 느낌조차 받지 못한 것처럼.

그런 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중고 거래를 일찍부터 몸에 익히고 살다 보니, 별안간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했다. 곧이어 여러 중고 거래 앱들이 나와서 컴퓨터를 켜지 않고도 중고 거래 글을 검색하고 자기 물건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카메라를 동원해서 사진을 찍고 메모리카드에서 데이터를 뽑아 첨부한다는 성가신 짓을 생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가히 혁신적인 변화라 할 만했다. 여러 기기가 통합되고 항시 인터넷 연결이 되는 환경이 갖춰지며 중고 거래도 날개를 단 셈이다.

하지만 중고 거래가 정말로 일상화된 것은 ‘당근마켓’의 등장 덕분이었다. 사내 플랫폼으로 시작되어 지금은 중고거래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성장한 이 앱은 가까운 동네 사람들끼리 간편히 만나서 물건을 직접 보고 거래하자는 콘셉트가 주효했다. 나처럼 마니악한 물건을 거래하는 사람은 전국의 마니아를 찾아야 거래가 가능했던 터라 택배 거래가 기본인데, 사실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택배 거래를 번거로워서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쉽게 다닐 수 있는 범위만 제한적으로 보여줘서 직거래를 권장한 당근마켓은 너도나도 잡다한 물건을 쉽게 사고 팔수 있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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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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