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존재감
2024/04/16
나의 첫 직장은 패션 유통 회사였다. 신입 사원 교육으로 코디 강의를 들을 때였다. 전날 과제로 밤을 새웠던 나는 무거운 눈꺼풀과 씨름하다 강사의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색깔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는 ‘색깔이 없는 색깔’도 있다는 것이었다. 색깔은 색깔인데 색깔이 없는 색깔의 이상야릇한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무채색이었다. 하얀색, 회색, 검은색을 분명 색이라고 부르지만, 색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만일 상의는 노란색과 하얀색, 하의는 파란색과 검은색으로 된 옷을 입으면 몇 가지 색으로 코디를 한 걸까? 무채색인 하얀색과 회색을 제외하고 파란색과 노란색만 색으로 인정하여 ‘2도 코디’라고 부른다.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있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 출퇴근 길에 마주치는 인파 속에서 ‘왜 이리 사람이 많아!’라며 인상을 찌푸리는 사이에 수많은 개성은 그저 ‘사람’이라는 보통 명사에 묻혀버린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존재가 나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나 역시 그중 하나일 뿐이다.
<서른의 반격>은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보통사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1988년생 김지혜는 보통사람을 대변하는 소설 속 주인공이다. 흔한 이름만큼이나 평범한 지혜는 마라톤 행렬 속에 파묻혀 떠밀려가듯 서른이 된다. 지혜는 정직원 자리가 없다면 그 옆에 간이 의자라도 앉아서 기회를 엿볼 셈법으로 인턴이 된다.
꼰대인 김 부장과 일하며 지혜는 세대 갈등에 몸서리친다. 사수인 유 팀장을 통해서는 유...
14년간 쿠팡과 이랜드에서 온∙오프라인 MD로 일하며 TOP 매출을 찍어본 영업통. 동시에 3권의 책을 쓴 출간 작가. 현재는 '물건 잘 파는 작가'로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