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을 이용해 이상을 실현하려던 "마왕", 기타 잇키(北一輝)

제이슨
제이슨 · 역사, 국제정치 등을 다룹니다.
2024/05/16
만화 "잇키 만다라" 속 기타 잇키
일본 제국은 헌법을 보면 알겠지만 천황주권론을 지향하고 있다. 이를 다른 말로 '국체론'이라고 부르는데 당대 일본인들은 번벌 세력과 일반 국민 뿐만 아니라 이타가키 다이스케, 나카에 조민 같은 자유민권운동 계열 인사들도 이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는 천황은 국가 최고 기관일 뿐이라는 천황기관설을 주장한 미노베 다쓰키치도 천황제 자체를 건드리진 못했다. 이렇듯 천황제는 일본 제국에 있어서 성역이었고 오늘날의 일본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웬만해서 건드리는 것을 자제하자는 쪽이 우세하다. 그렇지만 일본의 천황제에 저항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첫번째는 바로 사회주의자들. 이들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당연하니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오늘 소개할 인물이자 국체론의 핵심인 '천황의 국민'을 '국민의 천황'으로 180도 뒤집어 버린 인물, 기타 잇키(北一輝)다.
기타 잇키는 1883년 니가타 현 사도 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기타 데루지로로 그는 소년시대와 청년시대의 초기를 "절해의 고도인 사도에서 외롭게 보냈다"고 말할 정도로 불우했다. 실제로 그는 가운이 기울어가는 집안의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을 짊어져야 했고 한쪽 눈의 실명, 정규 교육 중단 등의 고난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방황했다. 그러던 그가 방황을 멈춘 것은 와세다 대학의 청강생으로 들어가면서 였다. 기타 잇키는 저명한 학자들의 강의를 수강하면서도 도서관에 파묻혀 살면서 사회과학 서적을 섭렵했다. 
또 이 시기에 일본에선 자유민권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따라 신문과 언론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었고 기타 잇키도 신문에 글을 기고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때부터 그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러일전쟁에 동조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그 당시 일본의 사회주의자들의 상당수는 러일전쟁을 반대했었다. 하지만 기타 잇키는 이들과는 생각이 달랐다. 왜냐면 빈민의 친구인 사회주의자들이 백인의...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