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신발의 명과 암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10/07


족저근막염 판정을 받은 뒤로 평이 좋은 신발을 여럿 구해서 신어보고 있다. 물론 중고로. 나도 신발처럼 몸에 닿는데다 세탁이 쉽지 않은 물건은 기왕이면 새것을 쓰고 싶지만 돈이 없는 걸 어쩌겠는가? 15만 원을 호가하는 신발을 이 브랜드 제품, 저 브랜드 제품 하나씩 사서 시험하는 건 어지간한 유튜버나 갑부가 아닌 다음에야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신뢰성이나 위생 문제가 다소 마음에 걸리더라도 가격 앞에서는 마음을 바꾸지 않을 수가 없다. 정가 20만 원 쯤 하는 물건을 2만 원쯤에 구할 수 있다면, 심지어 겉보기에 별 문제도 없어 보인다면 다른 문제는 적당히 제쳐놓게 되는 게 사람 마음이다. 아니, 설문조사 따위를 한 것도 아니니까 ‘적어도 나는 그런 편’이라고 정정하자. 아무튼 나는 과도할 정도로 중고 제품에 의지해서 사는 사람이라 보편적인 사람으로서의 대표성은 다소 부족하겠지만, 사람이란 보통 한정된 기회를 놓치는 데에서 큰 손해를 느끼게 되어 있다고 하니 잘못된 생각은 아닐 것이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오랜 기간 살펴보니, 신발이란 물건은 중고 시장에서 상당히 독특한 성질을 갖는 매물이었다. 무엇보다 어지간히 정가가 비싼 신발이라도 가격이 엄청나게 떨어지곤 한다. 옷도 그런 경향이 있고 전자제품도 간혹 이게 이렇게까지 싸게 팔리나 싶은 매물이 종종 있는 편이지만, 신발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싼 매물이 많다. 나는 중고 거래의 주의점 중 하나로 ‘특별한 이유 없이 시세보다 너무 싼 매물은 주의할 것’을 주장하고 다니는데, 이 주의사항이 신발에 한해서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근래에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 예로, 나는 발이 본격적으로 아프기 전에 아디다스의 울트라부스트가 좋다는 말을 듣고 중고 울트라부스트 3.0을 4만 원에 샀다. 정가가 20만 원쯤이니 제법 괜찮은 구입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뒤에 울트라부스트를 채용한 다른 라인업인 노마드 모델을 줍고 말았다. 중고로는 3만 원쯤 하는 물건으로, 더 패셔너블할 뿐더러 심지어 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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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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