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월드컵팀 야사 3 – 아르헨티나 그대를 위해 울지 말아요.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2/12/29
아르헨티나 월드컵팀 야사 3 – 아르헨티나 그대를 위해 울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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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팅은 아르헨티나 축구팀에 얽힌 아르헨티나 현대사에 대한 단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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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월드컵이라는 오명 속에 악으로 깡으로 억지로 강제로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우승대에 세우긴 했으나 나라 형편은 좋아지지 않았다. 칠레의 살인마 피노체트는 ‘칠레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경제 성장이라도 일구었지만 비델라의 아르헨티나는 갈수록 막장이었다. 치솟는 물가와 감당 못할 외채는 아르헨티나 경제를 짓눌렀고 아르헨티나 군부 내부의 사정도 심상치 않게 돌아가면서 1981년 3월 비델라는 권좌에서 물러섰다. 정권을 물려받은 것은 로베르토 비올라 장군이었지만 1년을 버티지 못했고 레오폴도 갈티에리가 그 뒤를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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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을 쥐잡듯 잡으면서 그 불만을 월드컵 한 방으로 승화시키려 했던 선임 독재자들의 뒤를 이어 갈티에리는 새로운 한 방을 기획한다. 포클랜드 전쟁이었다. 아르헨티나는 남대서양에 위치한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을 놓고 영국과 분쟁을 빚어 왔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아르헨티나 군부는 무력으로 포클랜드를 점거하더라도 노쇠한 제국 영국이 대양을 가로질러 별 볼 일 없는 섬을 지키고자 싸우려 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 포클랜드에 군대를 상륙시킨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오판이었다.

포클랜드 섬에 다시 유니언잭을 휘날리는 영국군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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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자 앤드루가 전투기를 몰고퀸 엘리자베스 2호 호화여객선이 군사용으로 징발되는 등 영국은 총력전을 펼쳤고 아르헨티나는 ‘썩어도 준치’였던 영국에게 참담한 패배를 당한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군부는 보도통제를 통해 이 사실을 철저하게 숨긴다. 아르헨티나 군이 항복하고 포클랜드 전쟁이 마무리된 것은 1982년 6월 14일.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이 킥오프 된 것은 6월 13일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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