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축구팀 월드컵 야사 1 - 그들의 축국일체(蹴國一體)
2022/12/21
아르헨티나 축구팀 월드컵 야사 1 –그들의 축국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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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시작된 것은 1930년이다. 우루과이에서 첫 월드컵이 열렸다. 우루과이 독립 100주년을 맞은 이벤트였고 통 크게 교통비와 각종 경비를 몽땅 우루과이가 대겠다고 한 결과였다. 축구 본가를 자처하던 유럽 나라들은 불만을 터뜨렸지만 월드컵의 산파라 할 쥘 리메가 발벗고 설득에 나서 프랑스, 루마니아 등 유럽 국가 대표팀이 대서양을 건너 월드컵의 구색이 맞춰진다. 하지만 결승전은 남미 국가들의 각축으로 귀결된다. 우루과이 대 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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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브라질과 전쟁을 치르며 우루과이의 독립에 일조했던 아르헨티나이니만큼,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관계는 매우 좋았지만 축구에서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라이벌이었다. 우루과이는 1924년과 1928년 올림픽에서 우승했고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는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했다. 아르헨티나로서는 절치부심 타도 우루과이를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첫 월드컵 결승전에서 만난 양팀은 각자의 공으로 전후반 나눠 찰 만큼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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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우승 꿈을 선도한 사람은 기예르모 스타빌레라는 선수였다. 그는 원래 돋보이는 선수가 아니었다. 볼보이 전문이었고 물주전자를 기본으로 날랐던 후보 선수였다. 아르헨티나 월드컵 대표팀에 끼었으니 못하는 선수는 아니었겠지만 그가 열기를 뿜은 건 그라운드가 아니라 벤치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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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르헨티나 선수단에 기이한 해프닝이 벌어진다. 주전 공격수 한 명은 대학생이었는데 학기말 시험을 봐야 한다면 돌연 아르헨티나로 귀국을 해 버렸다. 요즘의 아르헨티나라면 총을 맞을 일이고 당시에도 분노가 들끓었지만 그 학생은 교수가 날리는 쌍권총을 무서워했던 것 같다. 또 한 명은 공황발작을 일으킨다. 이런 식으로 선수가 축나자 마침내 스타빌레에게 기회가 온다. 그나마도 ‘비장의 무기’ 같은 게 아니었다. “감독님. 얘를 넣으면 얘한테 패배 책임을 뒤...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누군가 한 번은 정리해주면 꼭 봐야지 했던 분야군요.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