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월드컵팀 야사 - 더러운 전쟁과 인간의 용기
2022/12/22
아르헨티나 월드컵팀 야사 2 – 더러운 전쟁과 인간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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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월드컵이 유럽에서 개최됐으니 이번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대회를 열 차례였다. 아르헨티나는 또 유치 경쟁에 나선다. 벌써 수십 년째 월드컵을 오매불망 바라보는 아르헨티나가 이번에는 꿈을 이루는가 싶었다. 하지만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치른 멕시코는 올림픽의 열기를 월드컵으로 이어가고자 했고 많은 FIFA 회원국들이 그에 동의했다.아르헨티나는 또 52대 32 큰 표차로 유치경쟁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격, 아르헨티나는 남미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는 거대한 충격에 휩싸이고 만다. 볼리비아와 페루에 연패를 거듭하는 모습은 아르헨티나 축구팬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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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남미의 라이벌 브라질은 사상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줄 리메 컵을 영구히 소장한다. (지금의 월드컵은 그 후 다시 만들어진 것이다. 줄 리메 컵은 도난당해 버렸지만)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배가 끊어질 듯 아팠겠지만 도리가 없었다. 문제는 축구 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자체가 점점 더 나락에 빠져들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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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에서 MIT 공대 교수 대런 애쓰모글루는 아르헨티나가 주로 소수 엘리트의 지배를 받는 수출농업경제의 성장에 의존했기에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수반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페론 정권 하에서 아르헨티나는 무역 분야에서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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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선진국들은 전후 자유무역으로 회귀하기 위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를 협의하는 중이었지만 페론 치하의 아르헨티나는 새로운 개방경제의 시기가 열리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수입대체에 적극 나서면서 폐쇄경제 방향으로 치우치고 말았다.” (한국경제신문 2015.2.13.) 첫 대회에서 우승컵을 거의 거머쥐었던 아르헨티나가 시덥잖은 이유로 월드컵을 거부하고 스스로...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