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싶었어요. 미술도, 피아노도.

한연화
한연화 · 미친 세상을 사는 아스퍼거 ADHD인
2023/08/25
큰아빠가 언제부터 내 인생을 조종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다시 나의 어린시절 모습 중 한 단면을 이야기해볼 차례가 온 것 같다. 언제부터였는지 자세히는 모르나 여섯 살 때의 나는 이미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어린이집 준비물로 산 크레파스며 스케치북, 색연필, 할머니를 졸라 산 수채화물감과 붓이 내 장난감이었고, 나는 자주 바닥에 엎드려 이것저것을 그림으로 그리며 놀았다. 

"할머니, 이거 봐! 해님!"
"그려? 우리 손녀 참 잘 그렸네."
"그리고 이건 할머니 선물! 나 할머니 그렸어."

해님, 달님, 별님, 구름, 나무 등 온갖 것을 그리며 놀던 나는 학교 가기 전인 일곱 살이 되어서도 그림을 손에서 놓을 줄 몰랐고, 어느 날부터인가 큰아빠는 내 손에서 스케치북이며 크레파스를 뺏어가기 시작했다.

"너 이제부터 그림 그리지 말고 공부해! 쓸데없이 그림은 무슨 그림이야. 화가가 얼마나 배고픈 직업인지 알기나 해! 이제부터 그림 그리지 말고 수학, 영어 공부해!"

일곱 살 어린이이가 수학이 뭔지, 영어가 뭔지 어찌 알겠는가. 큰아빠는 그런 내게 수학, 영어 공부하라고 윽박을 질러가며 스케치북을 뺏어가 찢어버렸고, 그때마다 나는 와앙 하고 울었으나 울면 돌아오는 것은 큰아빠의 꾸지람이었다.

"뭘 잘했다고 울어! 공부도 안 하면서 그림이나 그리는 게 뭘 잘했간디 울고 지랄이야!"

큰아빠가 어린 나를 몰아세우며 스케치북을 좍좍 찢어버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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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와 학교폭력 등을 겪고 살아온 아스퍼거 ADHD인입니다. 남들 하는 걸 못해 세상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하고 살고 있으나 어떻게든 적응 중입니다. 가족, 특히 큰아빠에 대한 트라우마와 어린 시절, 그리고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에 대한 트라우마는 현재 마주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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