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의 태극기들을 대하는 자세
2023/11/13
이쪽의 태극기들을 대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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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이런 저런 대화 가운데 모시는 사장이나 거래처 직원이나 장인 장모 등등 주변 인물들의 뒷담화가 나올 때가 있다. 그 중 그들의 정치적 성향이 이른바 ‘극우수구’에 해당하거나 별로 설득의 여지가 없는 답답이에 가까울 경우 튀어나오는 표현이 “완전히 태극기야,”가 되겠다. 주역에 등장하는 문양과 의미로 ‘점집 깃발’ 이라는 비하를 감당하고 있기는 하나, 그래도 박영효가 만든 (다른 설도 있다.) 이래 100여 년 동안 주권국가의 상징으로 쓰여 온 태극기에 좀 미안한 감정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태극기가 이런 지경에 빠져든 데에는 광화문 앞 태평로를 상당 부분 전세낸 듯 설치고 다니는 ‘태극기 부대’의 공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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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부대의 특징은 일단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며칠 전 광화문을 지나다가 성조기 태극기 이스라엘 국기를 쳐들고 십자가 아래 선 태극기 부대에게 재우쳐 물었다. “성조기는 이해하겠는데 이스라엘 국기는 대관절 왜 흔드시는 거예요?” “미국의 동맹국은 우리 친구니까요.” “미국의 동맹국이 하나 둘이 아닌데 왜 이스라엘 국기만 흔들어요?”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니까!” “이스라엘 나쁜 짓도 많이 하는데...... ” “어허 이 양반이. 빨갱이 같은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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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퍼센트 실화다. ‘빨갱이’ 말 나온 순간 나는 고개를 흔들고 돌아섰다.더 말을 붙일 이유도 없고, 들을 건덕지도 없다. 자신들만의 논리와 자신들만의 팩트와 자신들만의 역사로 무장한 벽창호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유일하다. ‘그냥 그대로 두는’ 것 뿐이다. 마음 단단히 먹고 달라붙어야할 때도 있겠으나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 일에 공력을 들일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냥 그렇게 생각하다가 돌아가시라 혀를 찰 밖에. 아 태극기스럽다 한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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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태극기스러움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구축한 신념 체계를 위협하는 사실 일체를 부인하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팩트만 골라 믿으며, 스스로 세워둔 역사관에서 ...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