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피해 고백] "'더 글로리'는 없다"… 현실은 박연진 편
2023/03/14
<더 글로리> 속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현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현실의 피해자들은 드라마처럼 통쾌한 복수를 하지 못한 채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13년 전, 중학교 1학년이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담임선생님은 반장에게 학교폭력 실태조사 설문지를 반에 돌린 뒤 작성이 끝나면 모아서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반장은 내게 설문지를 나눠주며 싱긋 웃었다. '학교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체크하고 그대로 펜을 내려놨다.
10분쯤 지나자 반장은 책상에 놓인 설문지들을 하나씩 수거해갔다. 반장은 내 설문지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다시 싱긋 웃었다. 복도에서 무릎 꿇으라 소리 지르며 1년 내내 나를 괴롭히던 반장은 그렇게 무해한 사람으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이방인·학교폭력 피해자·장애 학생…소수자는 괴롭혀도 돼
초등학교 6학년, 학군이 좋다며 이사 간 동네에서 '지옥'이 시작됐다. 낯선 아이들과 친해지려 부단히 노력하던 학기 초, 반에서 가장 키가 크고 힘이 세던 반장은 사소한 빌미를 잡더니 학교 뒤편 아파트 단지 놀이터로 나를 데려갔다. 반 학생 전체가 구경 온 자리에서 영문도 모른 채 얻어맞은 다음 날부터 '왕따'로 낙인찍혔다. 때려도 되고, 훔쳐도 되고, 욕해도 아무 일 없던 1년은 참 길고 긴 시간이었다.
초등학생 때 겪은 학교폭력 피해는 초등학교를 벗어난 다른 공간에서도 가해 학생의 괴롭힘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용됐다. "너 초등학교 때 왕따였다며?"로 다시 시작된 괴롭힘은 학교와 학원 모두에서 이어졌다. 폭력이 용인된 단체에서 피해자 홀로 저항할 수단은 없다. 이사를 한 번 더 가고 고등학교에 입학해 내가 왕따였음을 아무도 모를 때에야 4년에 걸친 따돌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겨우 벗어난 왕따의 자리엔 비장애인들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운 발달 장애 학생들이 남겨져 있었다. 가해 학생들은 장애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