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하고 맑은 힘",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각자 나름의 연대

윤지연 · 교사
2023/10/18
최은영, <쇼코의 미소>

나무에서 숲 되기

우리가 타자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타자의 존재가 숭고하고 거창한 무언가이기 때문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살아감으로써, 즉 타자를 한 걸음 너머에서 지켜보고, 이해하고, 서로 기대고 연대함으로써 우리는 내적인 성찰과 함께 스스로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다. 나무가 제각각 간격을 두고 모여 자라며 큰 숲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타자와의 불완전한 관계가 ‘나’를 성장시키고 더 완전하게 하는 것이다.

서영채 문학평론가는 <쇼코의 미소>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순하고 맑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는데, 그것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힘으로 풀이할 수 있다. ‘소유’를 비롯한 인물들은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지르고 남에게 상처를 주고 또 받는 모습으로 나온다. 예컨대 ‘소유’는 앞서 짚어본 것처럼 자신의 입장에서 ‘쇼코’라는 존재를 정의내리는 오류를 범한다.

또한 아빠를 애도할 기회를 제게서 뺏어갔다는 이유로 엄마를 용서하지 못하거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앤 줄 알고, 볼 때마다 살 좀 빼라고 닦달인” 모습으로 할아버지를 판단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쇼코’라는 타자의 등장과 그의 편지를 계기로 ‘소유’ 는 자신도 몰랐던 가족의 모습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내가 알고 내가 느꼈던 것들이 상대의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서툰 소통은 할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마치 처음 사귀 는 사람들처럼” 진솔한 이야기를 터놓으며 이루어진다. 처음 사귀는 생면부지의 외국인들에게 편지를 보내오던 ‘쇼코’가 그랬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그 예순다섯 날들만큼 하루하루를 깨어 살아본 적은 없다. 
우리 셋은 보이지 않는 법이라도 있는 것처럼 안방에서 함께 잤다. 할아버지가 장롱 쪽에서, 엄마가 문가에서, 내가 그 가운데에서 잤다. 불을 끄고 천장을 보면서 하던 이야기들. 그전에는 하지 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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