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는 왜 정치적 위기에 부딪혔나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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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6
By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출처: 톨가 아크먼, 셔터스톡 EPA
영국 총리가 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리즈 트러스는 정치사에서 최단 기간 만에 신기록을 수립한 정치가로 기록될 것 같다. 시장 반응이 불리하자 정책을 뒤집을 수밖에 없었던 지도자는 그 말고도 있었다. 그러나 경제 정책을 발표한 뒤 그 골자를 단 열흘 만에 뒤엎는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중도 우파의 입장에서는, 약간은 고소하다는 생각도 든다. 보수당은 늘 진보적 정책이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 인플레이션이나 중앙은행의 긴축 정책으로 채권 금리가 오르고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질 때 국채를 대량 매도하는 투자자들)’ 때문에 만드시 대가를 치를 거라고 경고해왔다. 채권 자경단이 공공 지출 상승 가능성이 우려될 때 금리를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런 식의 경고는 대개 틀린 것이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이 채권 자경단이 실제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트러스 정부가 경제 정책을 발표한 뒤 금리가 치솟은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초과 지출에 반응한 것이 아니었다. 무책임한 감세에 반응했다.

이 사안을 ‘트러스 총리가 재정 적자가 악화되고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는 정책을 제안했고, 시장이 금리 상승과 파운드화 하락으로 반응했다’는 단순한 이야기로만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는 실제로 발생한 일의 상당 부분을 놓치는 일이다. 비단 돈 문제만이 아니다. 정부가 상황 인식 능력과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게 중요하다.

트러스 총리가 제안한 감세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트러스 정부는 예산 평가 없이 정책을 발표했고, 그 부분이 시장의 신뢰를 잃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나온 평가는 있었다. 예컨대 영국의 싱크탱크인 레졸루션 재단은 트러스 정부의 감세로 향후 5년간 1460억 파운드(234조 원)의 손실을 입을 거라고 추정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예측치의 약 1%에 달한다. 이 수치는 아주 작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수준도 아니다. 게다가 전격 철회가 이뤄진 특정 감세는 최고소득세율 인하로, 전체 정책안 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시장은 왜 그렇게 격렬하게 반응했을까. 트러스 총리와 쿼지 콰탱 영국 재무장관이 최고소득세율 인하가 경제 성장의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신빙성 없는 주장을 펼치면서 정부 정책을 정당화했던 탓이 크다. 이는 그들의 국정 수행 능력과 현실 감각에 대한 의심마저 불러 일으켰다. 주요 은행의 경제학자들의 입에서 한 나라의 여당이 종말론 교파(doomsday cult,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시)가 된 것 같다는 말이 나오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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