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숏]무신론자가 말하는, 종교를 논리적으로 존중하기.
2023/02/01
사실 종교 얘기는 비종교인과 종교인이 편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래서 제목만 보고도 '어어 이런 이야기를 해도 돼??'라고 생각하며 들어오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종교인과 비종교인, 심지어 독실한 종교인과 신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무신론자는 분명 같은 세상에 살고 있고, 때로는 저처럼 친한 친구 사이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저는 진지하게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차이를 오랫동안 생각해 왔습니다.
왜냐면 제 정말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다른 친한 동생 한 명은 종교 자체에 독실하지는 않아도 ...
그래서 제목만 보고도 '어어 이런 이야기를 해도 돼??'라고 생각하며 들어오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종교인과 비종교인, 심지어 독실한 종교인과 신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무신론자는 분명 같은 세상에 살고 있고, 때로는 저처럼 친한 친구 사이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저는 진지하게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차이를 오랫동안 생각해 왔습니다.
왜냐면 제 정말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다른 친한 동생 한 명은 종교 자체에 독실하지는 않아도 ...
인공지능, 정치과정, 국제정치, 사회 시사 이슈 등 다루고 싶은 걸 다룹니다.
기술과 사회에 관심이 많은 연구활동가(Activist Researcher)입니다.
연구, 협업 등 문의 tofujaekyung@gmail.com
저도 무신론자이고 종교와 관련된 대화는 언제나 민감하긴 하죠
하지만 본인들의 신념에 대해서는 존중합니다. 다만 그것을 다른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신에 대한 개인의 감정을 존중하면 싸울 일도 없.
십자군 전쟁도 신의 뚯이라기보다는 신을 앞세운 인간의 욕심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문제는 인간의 이기심! 이 아닐까요.
무신론자들도 유신론자들도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좋겠어요. 나와 다른 너로 규정하고 고치려들면 싸움과 갈등은 필연인듯
@유영진 개신교 입장에서 이야기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이 최신 미디어 트렌드(?)에 맞추고자(개인적으로 감기기도 하고..) 숏폼으로 작성하며 제 원래 생각보다도 짧게 작성되었지만, 유영진님이 말하신 대로 다른 맥락, 그리고 개인으로 넘어가면 또 다른 의미들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믿음'이라는 키워드도 원래 종교에서의 '믿음'보다는, 우선은 '신'의 존재가 이미 확실하게 있는 종교인들의 세계관을 비종교인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한 표현으로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저는 개신교인입니다. 본문에 무례한 표현은 딱히 없었습니다. 다만 굳이 꼽는다면 종교가 마치 형이하학적인 현상을 (근거 없이) 설명하고 (믿음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만 동원되는 개념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 전근대의 종교는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오늘날 이 모든 사회적 풍조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교회에 다니는 독한(?) 2030 신자들과 대화해 보면, 종교적 경험은 그보다는 훨씬 미묘한 삶의 일부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믿음' 이라는 단어보다는 '고통의 의미' 라는 단어가, '구원' 이라는 단어보다는 '가슴 뛰는 회복의 이야기' 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쪽입니다.
종교적인 주제로도 얼룩소에서는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되면 제 주관적인 이야기도 (그리고 필요하다면 과학적 회의주의나 무신론 운동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선에서 의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에 대한 개인의 감정을 존중하면 싸울 일도 없.
십자군 전쟁도 신의 뚯이라기보다는 신을 앞세운 인간의 욕심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문제는 인간의 이기심! 이 아닐까요.
무신론자들도 유신론자들도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좋겠어요. 나와 다른 너로 규정하고 고치려들면 싸움과 갈등은 필연인듯
일단 저는 개신교인입니다. 본문에 무례한 표현은 딱히 없었습니다. 다만 굳이 꼽는다면 종교가 마치 형이하학적인 현상을 (근거 없이) 설명하고 (믿음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만 동원되는 개념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 전근대의 종교는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오늘날 이 모든 사회적 풍조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교회에 다니는 독한(?) 2030 신자들과 대화해 보면, 종교적 경험은 그보다는 훨씬 미묘한 삶의 일부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믿음' 이라는 단어보다는 '고통의 의미' 라는 단어가, '구원' 이라는 단어보다는 '가슴 뛰는 회복의 이야기' 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쪽입니다.
종교적인 주제로도 얼룩소에서는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되면 제 주관적인 이야기도 (그리고 필요하다면 과학적 회의주의나 무신론 운동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선에서 의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