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메이와 미소의 정주
2022/12/16
노랑의 미로는 집을 두고 벌어지는 일에 관한 사실을 다루고 가난의 문법은 멀쩡한 집에서 살아가는 폐지 줍는 노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마드랜드는 정주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내일이라도 당장 집을 나가 길바닥에 나앉아야 한다는 불안감 이상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쉼 없이 노동을 하면서도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니.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홈리스라 칭하지 않는다. 고전적인 형태의 부동산이 없을 뿐이지 '바퀴 달린 부동산'에서 생활하며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는 것처럼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하우스리스houseless'라 부른다.
영화 노마드랜드를 보지 않아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한국영화 소공녀Microhabitat가 떠올랐다. 예순네 살의 린다 메이처럼 미소도 땅에 붙어있는 집이 없다. 아니 있었지만 모든 것이 비싸지는 도시에서 집을 잃었다. 린다 메이는 지프에 붙어있는 트레일러에서 생활하지만 한국의 미소는 차가 아닌 아주 작은 이동식 집에서 살아간다.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쥐어짜 내거나 빌린 돈으로 방 한 칸을 마련하는 대신 좋아하는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다른 방식의 집을 선택한 것이다.
가난하고 병들고 고된 삶이지만 불안정과 고통이 노마드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는 모습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낮은 임금으로는 너무 많이 올라버린 집세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과로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더 일할 여력도 없는데...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섞여있다고 생각해요. 왜 그렇게 되었는지 따져서 책임을 물을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자격도 없고요. 심신이 힘드시고 억울하거나 화나는 부분도 있으시겠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겪어본 상황이 아니라 말을 보태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려우시겠만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럴 때 국가가 운영하는 쉼터 같은 곳들이 도처에 있어서 수치나 모멸감을 느끼지 않고 많은 이에게 쉼을 허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정주... 낯선 단어인데 눈에 들어 오네요. 제가 정주하지 못하는 삶이라는 것이 자각되서 이겠지요.
가난해서 괜찮을 사람은 없겠지만, 그 가난이 너의 책임이야라고 도묻지 않는 것만으로 잠시라도 숨 쉴 틈이 있는 것 같아요. 느지막이 뜻하지 않은 곤궁을 겪다보니 가난이란게 참 다채로운 모습이라는 것도 알것 같고.
가난해서 관찮진 않지만, 누군가 '관찮아 네 탓만은 아니야. 잠시 기대서 쉬어"라고 해 주면, 거기에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비를 피하고 잠을 청하지 않을까요. 그런 것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생각해보면 가난해서 문제야 - 라는 시각보다 가난해도 괜찮다. 가난해도 사랑할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해결에 더 도움이 되는 관점일지도 모르겠다. 가난해도 먹고 살만한 기본적인 것들은 마련할 수 있는 사회,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한숨을 덜 쉬게 만들어주는 정책 같은 것들을 생각해본다. 상대적으로 많은 것이 부족하거나 없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이 존재한다면 가난해도 괜찮은 것이 아닐까.
정주... 낯선 단어인데 눈에 들어 오네요. 제가 정주하지 못하는 삶이라는 것이 자각되서 이겠지요.
가난해서 괜찮을 사람은 없겠지만, 그 가난이 너의 책임이야라고 도묻지 않는 것만으로 잠시라도 숨 쉴 틈이 있는 것 같아요. 느지막이 뜻하지 않은 곤궁을 겪다보니 가난이란게 참 다채로운 모습이라는 것도 알것 같고.
가난해서 관찮진 않지만, 누군가 '관찮아 네 탓만은 아니야. 잠시 기대서 쉬어"라고 해 주면, 거기에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비를 피하고 잠을 청하지 않을까요. 그런 것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생각해보면 가난해서 문제야 - 라는 시각보다 가난해도 괜찮다. 가난해도 사랑할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해결에 더 도움이 되는 관점일지도 모르겠다. 가난해도 먹고 살만한 기본적인 것들은 마련할 수 있는 사회,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한숨을 덜 쉬게 만들어주는 정책 같은 것들을 생각해본다. 상대적으로 많은 것이 부족하거나 없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이 존재한다면 가난해도 괜찮은 것이 아닐까.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섞여있다고 생각해요. 왜 그렇게 되었는지 따져서 책임을 물을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자격도 없고요. 심신이 힘드시고 억울하거나 화나는 부분도 있으시겠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겪어본 상황이 아니라 말을 보태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려우시겠만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럴 때 국가가 운영하는 쉼터 같은 곳들이 도처에 있어서 수치나 모멸감을 느끼지 않고 많은 이에게 쉼을 허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