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 않아서 가난을 몰랐다.

홈은
홈은 · 15년차 집돌이
2022/06/16
때로는 가난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나보다 더 돈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가난을 더는 마주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생에 비례하여 얻어진 자산으로 기뻐했던 적도 있었다. 기회조차 내가 가난하지 않아 얻을 수 있었던 운이었다는 것을 글로는 알았지만 체감하진 못했는데 쫓겨난 사람들의 5년을 면면히 살펴보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말하고 다녔던 가난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스스로 가난한 삶이라고 말하던 사람들조차 그리 가난한 삶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가난에 대한 정의가 달라졌다. 살림살이가 곤궁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진짜 가난이 실은 여기저기 널려있었는데도 보지 못하고 살았다. 재물은 상대적인 개념이라 많거나 적거나 만족하며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삶은 앞으로도 영원히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가난을 동정할 대상으로만 여기고 싶은 나의 마음은 분명 위선이다. 나의 행동은 위선인데 아이들에게 가난은 문제가 아니라고 가르치는 나는 좋은 부모일까. 노력하면 가난에 다가가지 않을 수 있다는 거짓말을 하는 것은 괜찮은 일일까. 

서울의 집들은 재개발 재건축과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부지가 정해지면 조합이 들어서고 분담금이나 건설사가 정해지고 나서는 각종 인허가가 나고 이주를 시작한다. 사람이 사라진 주택가에 건설용 장비들이 들어오고 하루가 다르게 층수를 올려가며 아파트를 짓는 것을 나는 '집' 또는 '부동산'이라고 부르며 감흥없이 바라봤다. 

종종 임장을 했다. 가진 예산 안에서 좀 더 좋은 수익을 창출할 부동산을 매입하기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구역이 헐려나가고 흙더미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 이제 시작이구나.'라며 2년 혹은 3년 뒤의 시세를 예측하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흙더미 구역이 본래는 누군가의 집이었다는 사실을 쉽게 잊었다. 

세상의 집들이 9,000원짜리 레고판 위에 작고 예쁜 플라스틱 조각으로만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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