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커 픽

대학은 취업률 순이 아니잖아요

졸업. 픽사베이

지난 추석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인천에 계신 할머니 댁을 방문했죠.
차 안에서 저희 네 식구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결혼과 직장까지
소재는 매우 다양했죠.

그러다 문득 자녀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아동 사회복지사인 
어머니께서 최근엔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진로를 찾을 수 있다고 하셨죠. 

"자기 목표가 뚜렷한 친구들은 현업에 먼저 뛰어드는 것도 좋아 보여. 바깥에서 4년 먼저 경력을 쌓는다는 게 충분한 메리트가 될 수도 있잖아."

이말을 들은 동생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자녀가 생기면 무조건 대학은 보낼 거야. 엄마 말도 틀린 건 아닌데, 고등학생부터 자기 진로에 확신을 가지는 친구들이 얼마나 될까."

동생의 얘기를 듣다 보니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대학의 목적은 오로지 취업뿐일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취학률 현황. 통곚청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분석해 발표한 ‘OECD 교육지표 2021’ 주요 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만 25∼64세)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50.7%로 OECD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특히 청년층(만 25∼34세)은 69.8%로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 청년층 10명중 7명은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죠.

근본적인 부분부터 생각해보려 합니다. 우리는 왜 대학을 가는 걸까요?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겠죠.
대학 졸업장이 '디폴트'가 된 상황에서 차별 받지 않기 위해서, 취업시장에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죠.

대학 광고에서도 이런 부분이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지방의 사립대의 경우 높은 취업률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일부를 제외하고 현재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보다는 '취업사관학교'에 가까워졌다는 느낌도 듭니다.
피닉스 대학교. NBC 뉴스

잠깐 외국의 사례를 볼까요. 미국의 피닉스 대학교(University of Phoenix)은 전미에 200개의 캠퍼스를 두고 있습니다. 피닉스 대학교는 사실상 영리 추구가 주목적인데요. 이 대학은 경력 발전을 추구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근로 성인을 위해 온라인 학위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대신 교수의 95%가 시간강사이고 도서관, 기숙사 체육관 등 편의시설은 전무한 수준이죠. 교수와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은 배제하고, 교양 수업도 없앤 것이죠. 대신 등록금은 비교적 저렴한 편입니다.

물론 미국에는 지식과 교양교육을 중시하는 리버럴 아츠 칼리지도 존재합니다. 아이비 리그에 속하는 종합 대학도 있죠.

한국의 사례를 봅시다. 대부분의 한국 대학은 미국의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하고 있죠. 하지만 이러한 대부분의 대학은 취업률을 앞세우고 있죠. 심지어 예체능 계통 학과 역시 취업률이 높으면 지원률도 높아진다고 하니, 본말이 전도가 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조금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면, 최상위 10여 개 대학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한국 대학은 사실상 연구 중심이 아닌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취업사관학교'가 됐다고 볼 수 있겠죠.

이러한 사조가 강해지면서 혹자는 "이제 한국 대학도 뜬구름 잡는 교양 대신 실용적인 학문, 산업적으로 도움이 되는 학문을 중점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사철'이라 불리는 인문학(人文學)은 최근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문송합니다(문과라 죄송합니다)'라는 자조적 표현이 나온 것도 이러한 이유겠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윤석열 페이스북

국민의힘 대선주자 윤석열 후보도 최근 이러한 취지의 발언을 해서 논란을 키웠습니다. 윤 후보는 지난 9월 안동대학교를 방문했는데요. 아래는 윤 후보의 발언입니다.

"공학, 자연과학 분야가 취업하기 좋고 일자리 찾는데 굉장히 필요하다. 기업이 원하니까"라며 "지금 세상에서 인문학은 그런 거 공부하면서 병행해도 되는 거다. 그렇게 많은 학생을 대학교 4년, 대학원 4년…. 그건(인문학도) 소수면 되는 것이다."

이후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에서는 윤 후보 발언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같은 소속 유승민 후보는  "인문학을 통해 이루어진 치유는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보다 덜 분열되며 더 따뜻한 사회로 남고자 하는 힘의 원동력이었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죠.  이후 윤 후보는  "대학생들이 첨단과학, 컴퓨터 이런 데 관심을 갖고 역량을 갖추는 게 좋지 않겠냐는 뜻에서 한 말"이라고 해명했지만, 썩 효과적이진 않았죠.

어찌보면 윤 후보의 인문학 발언은 취업률이 최우선이 된 한국 대학의 실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자연과학과 공학 분야가 강세를 보이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윤 후보와 몇몇 사람들의 말처럼 인문학은 정말로 고리타분하고 쓸모없는 학문일까요.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세계 IT 역사의 족적을 남긴 3명 모두 대학을 그만뒀다는 것인데요. 공교롭게도 세 사람은 모두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함께 점심 한 끼를 할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과 바꾸겠다" - 스티브 잡스

"그리스 라틴 고전을 원전으로 읽는 것이 취미였다" - 마크 주커버그

"인문학이 없었다면 나도 없고 컴퓨터도 없었을 것" - 빌 게이츠

세상을 발전시킨 것은 기술이지만, 결국 그 기술 역시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들의 말에 수긍이 갑니다.

잠깐 샛길로 샌 것 같지만, 다시 대학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이제는 제 경험을 조금 얘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비수도권의 사립대학교를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학교에 대한 애정은 큽니다만, 누군가는 모교를 '지잡대'라고 비하하기도 했죠. 

방송과 언론을 전공한 저는 대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는 지금의 직업인 기자를 선택하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죠.

하지만 전공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공 수업을 제외한 교양수업이었죠. 각종 개론을 비롯해 대중문화 비평, 사진의 이해 등등 다양한 수업에서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양수업에서 배운 내용은 지금의 글쓰기에도 큰 도움이 됐죠.

교양은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혹은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뜻합니다. 교양있는 사람이란 뜻은 이같은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죠.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바로 일부 특권 계층만이 누릴 수 있던 고등교육(대학 진학)이 대중화된 시점이기 때문이죠. 경제가 발전할수록 지적인 욕구 역시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대학 진학률이 오르는 것도 전세계적인 추세죠.

지금은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한 대학이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교양있는 사회로 나가기 위해선 고등교육을 가르치는 대학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이죠. 

대학이 취업사관학교뿐만이 아니라 '진리의 상아탑'의 기능도 되찾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로 인해 대한민국이 교양 넘치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우리의 대학 졸업장 역시 단순한 인쇄물만은  아니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