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를 경계하라, '나는 신이다'에 대한 짧은 감상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3/03/07
'1번 과장님'
환자는 침대에 제대로 눕지 못했다. 구역질을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 검정 비닐봉지에 얼굴을 묻고 끝없이 개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끙끙이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것도 토하지 못했다. 환자는 서른을 넘지 않을 것 같은 젊은 여성이었으며 '날씬하다'란 범위를 넘어 지나치게 말랐다. 비닐봉지를 움켜쥔 손가락은 저절로 꺾일 듯했고 앙상한 팔은 조금만 건드리면 깨질 듯했다.
 
평소라면 환자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언제부터 증상이 있었느냐, 지금 가장 불편한 것은 무엇이냐, 진단받은 질환 혹은 꾸준히 복용하는 약이 있느냐, 이전에 비슷한 증상이 있었느냐, 증상이 발생하고 바로 응급실을 찾았느냐 아니면 다른 병원에서 진료해도 호전하지 않아 다시 응급실을 방문했느냐, 많은 질문을 속사포처럼 쏘았을 것이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굳이 그렇게 질문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간호사가 란셋(lancet, 몇 방울의 말초혈액을 얻을 때 사용하는 작은 침)으로 환자의 손가락 끝을 찔러 몇 방울의 혈액을 얻고 그걸 간이혈당계에 넣는 과정을 말없이 지켜봤다. 곧 혈당계는 '삐이'하는 소리와 함께 'HIGH'란 글자를 토해냈다.

일반적인 간이혈당계, 당뇨병 환자가 집에서도 널리 사용하는 혈당계는 500 정도까지 혈당을 측정할 수 있다. 그 범위를 넘으면 'HIGH'라고만 표시될 뿐이다. 따라서 환자의 혈당수치를 정확히 알려면 정맥혈을 뽑아 진단검사실로 보내야했다.

다만 간이혈당계가 측정한 'HIGH'란 수치만으로도 환자의 문제를 어느 정도 진단할 수 있었다. 70-110이 정상범위이며 식후와 식전의 구분없이 200 이상 측정되면 당뇨병으로 진단하니 환자는 심각한 고혈당이었다. 환자의 구토도 그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400-500 이상의 고혈당이 지속하면 케톤산이 과다하게 생성되어 몸이 산성화한다. 그러면 호흡이 가빠지고 구토가 발생할 수 있다. 그 단계에서 치료하지 않으면 의식저하가 발생하고 심각한 신부전이 발생하여 사망할 수도 있다. 흔히 ...
곽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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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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