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영화 <서울의 봄>이 엄청난 화제다. 웰 메이드 정도를 넘어 인생작이라는 평가도 여러 개 보이고, 압도적이라든가 숨도 못쉬고 보았다던가 하는 감상들이 즐비하다. 결국 내가 판 우물이라고 12.12와 서울의 봄, 그리고 광주로 이어지는 뼈아픈 현대사를 어제 일처럼 기억하는 사람들이 나의 타임라인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호평의 홍수에 허우적거리다가 아내에게 주말에 꼭 보자고 제의를 해 놓았다. 영화를 기대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교차하다보니 전에도 떠올린 사건 하나를 복기하고 싶어졌다. 부천IC 회군.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회군(回軍)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일 것이다. 5백년 묵은 왕조는 이 회군으로 결정적으로 허물어졌고 새 왕조의 문이 열렸다. 가히 순간의 선택(꼭 순간은 아니었겠으나)이 수백년을 결정했다고나 할까.
.
그 다음으로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회군으로는 1980년 5월 15일의 서울역 회군이 있겠다. 서울의 봄, 계엄 철폐와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서울역 앞 광장을 가득 채운 대학생 대군은 “군의 개입 명분”을 우려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심재철 등의 주장으로 해산을 결의한다. 서울역 회군이었다. 결과적으로 대학생 시위가 군의 개입 명분을 준 게 아니라 ‘회군’이 전두환의 청와대행의 오프닝 세레모니가 돼 버렸지만.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회군, 역사를 바꿀 뻔 했지만 그렇지 못하고 좌절했던 회군도 있다. 1979년 12월 12일 밤 9공수여단의 부천IC ‘회군’이 그 한 예다. .
9공수 여단 휘장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노태우 등 정치군인 사조직 하나회 출신의 군 지휘관들은 자신들을 견제하는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를 제거하고 권력을 찬탈하려는 군사반란을 일으킨다. 12월 12일 저녁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를 합동수사본부 (박정희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