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철학) 도구와 장치로서의 문(門) - 문(門)이란 무엇인가?(2)

실컷
실컷 ·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문화비평
2023/03/24
산 미겔 데 아얀데(unsplash)

도구와 장치로서의 문(門)

앞편의 논의가 원시인들이 문을 발명했다는 주장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잘못된 직관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직관이 더욱 건전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고, 앞으로도 유용할 것이다.

나는 아직 앞서 언급한, 무너진 집의 외로운 문이 여전히 내가 말하는 그 ‘문’인지 대답하지 않았다. 따라서 문이라는 도구가 어떻게 문으로써 기능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보다 폭넓은 논의를 위해, 도구가 어떻게 도구로써 존재하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도구가 자신의 쓸모를 다하고 있을 때, 도구는 우리 눈에 띄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필기를 할 때는 볼펜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볼펜을 쳐다보는 때는 잉크가 잘 나오지 않아 갑갑할 때이다. 

이는 잘 걷고 있는 이가 발 끝을 쳐다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도구다움, 즉 쓸모를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잃어버린다면 도구는 자신의 의미를 상실한다. 하지만 도구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의미를 잃어버릴 위험에 처할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하이데거는 존재자의 의미가 무화(無化)되었다가 다시금 나타날 때 우리는 경탄하게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기계가 고장 나는 일은 그저 부정적인 사건이 아니다. 엉켜버린 신발끈에 걸려 넘어질 뻔 한 다음이라도 신발끈이 예쁘게 매듭지어지면 만족스럽게 웃음이 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열린 문은 그냥 허공이다. 닫힌 문은 그냥 벽이다. 그런데 문은 열리기도 닫히기도 하기 때문에 벽이나 허공이 아닌 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열린 문이 자신의 주변과 관계 맺는 방식과, 닫힌 문의 그것은 배타적으로 다르다. 닫혀 있을 때에는 열려선 안되고, 열려 있을 때에는 닫혀선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두 모순적 양태(Modes)를 합쳐 문으로 부르고 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약간의 시간 동안, 우리는 문의 존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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