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는 “유맹”들의 풍경 - 현경준의 <유맹>

칭징저
칭징저 · 서평가, 책 읽는 사람
2023/11/16
국경 넘는 “유맹”들의 풍경 - 현경준의 <유맹>
   
“조선은 빽빽한 곳 이었습니다”로 시작되는 김동인의 소설「동업자」의 주인공 홍 선생은 동경 가서 7년 동안 “주린 배를 움켜쥐고” 신문배달, 우유배달을 해가며 “공부를 해가지고” 조선에 돌아온다. 하지만 조선은 그에게 어떠한 직업도 주지 않는다. “지식은 돈이 못 되나 지혜는 돈이 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 홍 선생은 “그리 많지 못한 지혜”를 팔아 “호구”를 하려고 “국경을 넘어”선다. 

만주 땅에서 자기와 똑같은 “지혜”(의사 행세)를 파는 조선인 “동업자”를 피해 다니다가 결국은 “눈보라! 그 밖에 또 눈보라 겹겹이 눈보라뿐인” 만주의 광야에서 “어떤 일본 계집애의 얼굴을 언뜻” 환영으로 보면서 생을 마감한다. 거의 자살이나 다름없는 이 ‘막다른 골목’에서의 홍 선생의 죽음은 「심문」에서 현혁을 쫓아 하얼빈까지 달려가 자살을 하는 여옥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아편중독자로 전락한 과거의 혁명운동가 현혁과 같이 파국을 향해 치닫는 30년대 식민지 “유맹(流氓)”들의 슬픈 이야기이다. 

홍 선생과 같이 조선인들이 직업을 구하러 만주에 찾아 “왔다기로니 별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륙으로 흘러들어온 조선인들의 생활을 소개하는 당시의 기사나 기행문이나 좌담회에서 직업문제와 함께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문제가 생계의 수단으로서의 조선인들의 아편매매와 밀수업이다. 이광수는 조선인들이 “지금도 밀수와 아편장사로 지낸다 하니 한스러운 일”이라고 한탄하기도 한다. 

상해시보(上海時報) 최경수는 이러한 “부정업자”들은 우리들의 한 “수치”이고 “재외동포의 발전에 큰 암(癌)”이 된다고 하면서 조선인들의 직업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만주 국경지대에서의 밀수업은 더 심해 “도문시(圖們市)의 상민(商民)으로서 밀수에 관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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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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