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잘가라 꽃상여 타고 - 박윤우 교수의 명복을 빌며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7/27
입에서 막걸리 냄새가 가시지 않던 신입생 시절이었다. 춘3월의 어느 날, 나와 같은 신입생이었던 여학생의 생일 파티가 열렸다. 남자 생일 따위보다는 여자 생일을 배로 챙겨 주는 성차별적인(?) 악습이 지배적이던 때였다. 더욱이 신입생이었으니 어떻게든 꼬드겨서 동아리 활동에 참여토록 해야 하는 것이 지상과제였던 바, 선배들의 축하는 도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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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조금 보태 대학 생활 4년과 사회 생활 수십 년 동안 라면 한 그릇 사 준 기억이 드문 구두쇠 87학번이 생일 맞은 그녀에게 푸짐한 꽃다발 하나와 자기 키만한 인형을 선사하는 모습은 지금도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보교재로 내 기억에 남아 있을 정도다. 동기들도 다르지 않았다. 아예 줄을 서서 선물을 줬다. 그날 여자 동기는 집에 선물을 다 들고 가지도 못해 동아리방에 상당량을 두고 갔을 정도였다. 그걸 동아리방까지 날라 준 게 나였다. 나 원 참. 내가 이렇게 온화하며 착하고 속없고 우직한 나라의 동량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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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선물 증정식이 대충 마무리된 뒤 케이크가 왔다. 그때만 해도 뚜레쥬르나 파리바게뜨 같은 거 없을 때라 오리온 쵸코파이를 쌓아 놓고 그 위에 초를 꽂은 게 생일 케이크였다. 형광등 끄고 촛불을 켠 뒤 해피 버뜨데이 내지는 왜 태어났니 부르려는데 선배들이 갑자기 이상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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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상여 타고 그대 잘 가라 세상에 모진꿈만 꾸다 가는 그대 / 이 여름 불타는 버드나무숲 사이로 그대 잘가라 꽃상여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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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상여 타고 이게 뭔 장송곡이야. 생일 파티에 이게 무슨 황망함인가. 그래도 생일을 기리는 가사가 나오갰지 하면서 끈질기게 기다렸는데 가사는 장송곡의 범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어이어이 큰 눈물을 땅에 뿌리고. 그대 잘가라 꽃상여 타고.“ 이쯤 되면 생일 맞은 사람 얼굴도 망연해지게 마련이다. 아니 내가 꽃상여를 왜 타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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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대한 연유를 캐묻자 선배들이 아주 잘...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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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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