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와 소손녕, 그리고 오늘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5/02
서희와 소손녕, 그리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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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년 중국 대륙에 송나라 왕조가 들어선다. 고려는 송나라가 들어서자마자 사신을 보내 송나라와 관계를 맺는다. (962, 고려 광종 13년) 이후 972년 고려 광종은 다시금 송나라에 사신단을 파견하게 되는데 그 정사(正使) 즉, 사신단장으로 임명된 이는 당시 나이 서른의 서희(942~998)였다. 이 젊은 외교단장 서희가 이끈 고려 사신 일행은 송나라에 들어가 송 태조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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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송 태조는 서희 일행을 그리 반가와하지 않는다. 고려가 외교적 노력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서희는 거란이 버티고 있는 육로 대신 바닷길로만 교류를 해야 하는 어려움을 조리있게 설명하고 송 태조의 마음을 누그러뜨다. 기분이 좋아진 송 태조는 서희에게 명예 국방부 장관이라 할 검교병부상서(檢校兵部尚書) 벼슬을 내리고 서희 이하 사신단들에도 높은 벼슬과 두둑한 선물을 내린다. 서른 나이의 서희는 이미 능숙한 외교관이었다.
   
976년 송나라의 2대 황제 태종은 몸소 대군을 거느리고 전 왕조인 후주(後周)가 거란에 내 준 연운 16주 회복을 위해 나아가지만 거란에게 참패를 당한다. 거란에 맞선 동맹군이 절실해진 송나라는 고려를 주목한다. 고려와 연합하여 거란을 견제한다는 ‘연려제요’(連麗制遼)는 이후 오랫 동안 송나라의 대 고려 정책의 기조를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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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하지만 고려는 송나라 태종의 군사 동맹 및 합동 작전 요구를 교묘히 피한다. 핵심은 실제 국익이지, 의리 따위가 아니었다. 송나라의 연호를 써 주는 등 그 정통성을 인정하고 동맹을 자처하되 송나라를 위한 전쟁에 끼어들지는 않겠다는 뜻은 이미 굳건했다. 그런데 같은 해 같은 거란은 발해의 유민들이 세운 정안국을 멸망시킨다. 압록강 중류와 남만주 일대에 자리잡고 반세기 가량 존속하며 고려와 거란 사이의 방파제 역할을 해 준 정안국이 사라졌으니 고려로서는 거란의 위협이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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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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