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성 자본주의’의 확산과 ‘양서류형 인간’의 탄생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11/28
일제시대 비오는 밤 평양 거리 모습. 출처-평양서경

‘점성 자본주의’의 확산과 ‘양서류형 인간’의 탄생  - 최명익, 「비 오는 길」
   
「비 오는 길」의 ‘병일’은 “성문 밖”의 “신흥 상공 도시”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다. ‘병일’이 자신의 집에서 그 공장에까지 가기 위해서는 “부행정 구역도”의 “좁은 비탈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 “길”은 “봄이면 얼음 풀린 물” 때문에 “질”었으며, “여름이면 장마 물이 그 좁은 길을 개천 삼아” 흐르기까지 했다. 더구나 길을 걷다 조금만 정신을 놓쳐도 “반드시 영양 불량 상태인 아이들의 똥을 밟”게 되는 질척한 길이다. 이 길을 걷다보면 아무리 조심을 하게 되더라도 “자신이 아끼는 구두 콧등을 여지없이 망쳐버리”게 된다. 

또한 이 길 주변으로는 “빈민굴”이 모여 있어 “동편 집들의 변소 수덩에서 어정거리는 개들과, 서편 집들의 부엌에서 행길로 뜨물을 내쏟는 안질 난 여인들”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골목에, 간혹 들어박힌 고가의 기왓장에 버짐같이 돋친 이끼가 아침이슬에 젖어 초록빛을 보이는” 것으로 봄이 왔음을 알게 되는 그런 길이다. “이 골목을 지나가면 갓 닦아 놓은 넓은 길이 나오지만 그곳도 아직 시가다운 시가를 이루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곳엔 아직도 집이 채 들어서지 않았으며 “시탄 장사, 장목 장사, 옹기 노점, 시멘트로 만드는 토관 제조장 등”의 장사터가 예전 모양으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각기병” 때문에 다리가 좋지 않은 ‘병일’에게 이 길은 “걷기 힘든 길”이었다. 하지만 ‘병일’은 “이 년” 동안이나 줄곧 이 길을 걸어 다녔다. “성문 안”에 “신작로의 수직선으로 뚫린 시가”가 있지만 ‘병일’은 그 길로 공장엘 가지 않고 성문 밖의 길로만 다니곤 한다. 성문 안의 도시는 그저 지나가는 길에 멀찍이 바라다 보이는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비 오는 길」의 초두를 장식하는 ‘질척한 길’...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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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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