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86을 위한 만가
2023/12/10
어느 86을 위한 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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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나랑 형이랑은 그리 인연이 없었죠. 술 몇 번 같이 먹었다고는 하지만 그나마 1대1이라기보다는 범접못할 선배와 까마득한 후배의 대작이었고, 좀 머리 큰 뒤에도 정다운 건배보다는 피차 “너 잘 만났다.”식으로 실실 웃으면서 뒤로 몽둥이 어루만지는 대결적 술자리가 태반이었으니까. 거기다가 뭐 굳이 밝히기는 뭐한 인연도 엮여 있지 않겠습니까. 굳이 표현하자면 우리 집안에 들어왔다가 훌쩍 나가 버린 옛 사위, 보고 싶지 않은 매형 느낌이랄까. 뭐 그건 더 언급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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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80년대 운운하는 자체가 참 민망하고 무안하지요. 이미 요즘 애들한테는 80년대 얘기가 우리 때 “6.25 때는 말이다.”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그래서 뭐? 우리가 아버지 세대에 “니들은 빨갱이를 모른다.” 하면 “아버지는 역사를 얼마나 아는데?”라고 되받아쳤던 것처럼 요즘 애들은 “80년대는 말이다.”라고 하면 “그렇게 해서 만든 세상이 이런 거요?”라고 코웃음을 친단 말이지. 태극기 노인들처럼 우와아아 우리는 옳았다 우리가 독재 위해 싸울 때 니들은 뭐했니 우기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말하는 586짜리 의원님도 계시더라만, 난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쪽팔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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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인정하는 부분이 명확합니다. 적어도 87년 6월 항쟁 이전,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은 힘들게 살았고, 그만큼 노력했고, 잡혀 가면 물고문에 몽둥이 찜질을 기본 세트로 각오해야 했고, 졸업한 뒤에도 자신의 터전을 ‘현장’으로 옮기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라는 걸 말입니다. 적어도 수천 단위의 ‘대학생’들이 자신의 꿈과 그를 위해 노력해서 얻은 학적은 물론, 그를 대의를 위해 포기했다는 자긍심까지 버려 가며 공장에 가고, 철거촌에 뛰어들었던 역사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그 헌신이, 그 열정이 어쨌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가능케 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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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형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형을 처음 본 건 형이 1989년 당...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