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와 최남선 - 한국 불교와 기독교의 관계(2)

칭징저
칭징저 · 서평가, 책 읽는 사람
2023/05/20
원효스님 진영(송광사)

최남선의 원효 연구

최남선은 원효의 독창성을 매우 강조했는데 최남선이 원효의 불교를 철학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최남선은 한국의 독특한 “통불교”가 원효의 교리에 의해 처음 체계화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효의 “화쟁”사상을 그 예로 들었는데 화쟁은 여러 불교 교리에서 상충될 수 있는 사상을 조화시키려고 한다는 사상을 말한다.  최남선은 원효는 당대 동아시아 불교 승려들 중에서 이러한 접근 방법을 최초로 쓴 승려였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최남선은  원효가 실제적으로 가장 위대한, 그리고 진정한 “한국” 승려라고 했다. 여기서 최남선이 ‘진정한’ 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다른 승려들과는 달리 원효는 중국에 간 적이 없고 한국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문제가 있어 1980년대부터 한국 불교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게 되었다. 먼저 “통불교”와 “화쟁” 사상은 원효가 처음 주장한 이론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와 법장(法藏: 643-712)이라는 중국 승려들이 처음으로 “화쟁”과 같은 혼합주의적인 접근 방법을 주장했다고 할 수 있다. 원효는 이러한 승려들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교리 안에도 포함시켰다.[1]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원효가 자신을 한국인으로 인식하지 않은 것 같다.[2]  7세기 동아시아 승려들은 지금의 민족 국가주의적인 사고 방식으로 생각하지 못했으며 모두 같은 동아시아 불교 전통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 교리적으로 볼 때 최남선의 원효에 대한 주장에는 문제점이 있었지만 최남선은 불교의 교리적 차원 이외에 원효가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것은 바로 원효의 사회 활동이다. 원효 사후찬녕(贊寧 919-1001)과 일연(1206-1289)에 의해 쓰여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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